[데스크 진단]지진 이후 다른 불안들

허진석 산업부 차장

입력 2016-09-26 03:00 수정 2016-09-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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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산업부 차장
 리히터 규모 5.8의 경주 지진이 12일 발생한 이후 여진이 계속되면서 괴담도 함께 피어나고 있다. 24일에 더 큰 지진이 발생한다는 괴담이 대표적이었다. 역대 최대 지진을 겪고 놀란 민심을 달래기 위해 경북 도지사는 24일 경주 지진의 진앙 지역인 내남면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했고, 경찰 300여 명은 경주 시내 곳곳에 분산 배치돼 25일 새벽까지 밤샘 근무를 해야 했다. 29일에도 큰 지진이 날 거란다.

 괴담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두고 2008년 확산돼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던 광우병 괴담처럼 불안과 무지를 먹고 자란다. 최근엔 사드 전자파 괴담이 있었다. 괴담에 필요한 백신은 과학적 합리성이다.

 괴담에 나온 것과 같이 날짜를 지정해 지진을 예측하는 기술은 현재 인류에겐 없다. 그래서 지진은 ‘경보’이고 날씨는 ‘예보’다. 민방위 훈련 때의 공습경보처럼 지금 일어난 일의 위험을 가장 빨리 알리는 것이 최선책일 뿐이다.

 날씨를 예보하는 기상청이 공교롭게도 지진 경보에 필요한 관측을 담당하고 있지만 날씨와 지진은 그 속성이 크게 다르다. 예측에 필요한 기초 자료의 차이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날씨는 인공위성과 레이더, 각국의 관측 자료, 역학을 기반으로 한 수치예보모델 등의 도구를 활용할 수 있지만 지진은 땅속을 볼 수 있는 도구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일본에 있다는 ‘지진 예보’도 지진의 진동이 도달하는 시간이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나면서 진동 몇 초 전에 일부 지역에서 먼저 지진 발생 사실을 아는 정도에 불과하다.

 진앙 지역에서의 도지사의 하룻밤이나 경찰들의 밤샘 근무와는 비교가 될 수 없는 큰 사회적 비용이 우려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3일 의원총회를 통해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과 원전 안전강화 촉구 결의안’을 당론으로 결정했다.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잠정 중단하고 안전성 조사를 즉각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을 중시하는 이런 주장은 원칙적으로 옳고도 당연하다. 문제는 이런 논의가 과학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진행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하필 내년 말이면 대통령 선거 일정이 시작된다. 영남권의 지지가 절실한 야당의 입장에서는 ‘정치적 이득’을 위해 원전 건설 중단을 과하게 밀어붙일 공산이 큰 사안인 것이다.

 새누리당은 신고리 5, 6호기 건설과 관련해 뚜렷한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원전에 대한 국민의 불안은 알지만 에너지 정책의 근간을 급격히 바꾸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고리 원전 부지 인근에서 새로 활동성 단층이 발견됐지만 검토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원전 건설 반대의 주된 근거다. 현재 원전 건설 기준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분석되지만 다시 면밀하게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더민주당은 원전 건설의 ‘잠정 중단’을 요구하고 있어 합리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정치인들의 정치적 이해 때문에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것을 막으려면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어야 하지만, 한국은 그런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 앞으로 전개될 원전 건설 중단 논의 과정에서 전문가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이번 경주 지진 때 집 밖으로 뛰쳐나가신 노모를 영남 지역에 두고 있는 필자도 지진은 걱정된다. 그러나 과학적으로는 대지진도 아니고 강진도 아닌 ‘중간 정도의 지진’이라는 사실을 보는 냉철한 눈도 필요한 시점이다.

 지진 후 지진보다 더 큰 사회적 피해가 발행할까 하는 이런 우려들은 기우에 그치기를 바란다. 과학적 합리성에 바탕을 둔 이성적 행위만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과 불안을 줄일 수 있다.

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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