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서 도태될라”… 한국 ‘규제프리존’ 시급하다

박민혁 인턴기자, 우종현 인턴기자, 장윤정기자

입력 2016-09-23 03:00 수정 2016-09-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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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희비 쌍곡선/꽉 막힌 특별법]선진국 뛰는데 팔짱 낀 한국

 # 독일 화학·제약업체인 바이엘은 이달 18일 세계 최대 종자회사인 미국 몬산토를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인수액은 660억 달러(약 74조 원). 최대 규모의 ‘공룡 농업기업’이 등장하면서 세계 종자시장의 긴장은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는 세계적 화학기업인 다우케미컬과 듀폰이 종자산업을 위해 합병을 발표하기도 했다. 통합 회사의 기업가치는 1300억 달러(약 143조 원)나 된다. 올해 2월엔 중국 국영기업인 켐차이나가 스위스의 종자기업인 신젠타를 사들였다. 치열한 인수합병(M&A) 전쟁이 벌어질 정도로 식량·종자시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산업이다.

 # 미 연방항공청은 2년 동안의 논의 끝에 상업용 드론 운행 규정을 지난달 29일 공표했다. 일본은 지난해 말 도쿄 인근 지바 시를 드론 특구로 지정하며 3년 안에 드론 택배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은 드론 택배에 대한 규제 자체가 없다.

 일본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이 농생명, 드론, 무인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할 신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에 한국의 움직임은 더디다. 지역별 전략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규제프리존 특별법은 여야 간 정책에 휩쓸리며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감한 관련 규제 완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경쟁국들에 신성장산업 주도권을 완전히 내줄 뿐만 아니라 석·박사급 두뇌 유출 등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입을 모은다.


○ “경쟁력은 충분한데…” 애타는 지자체

 
8월 1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규제프리존 특별법 시도지사 간담회’ 모습. 시도지사 14명은 “규제프리존이 지역경제가 살아날 지름길”이라며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다. 지역발전위원회 제공
지난달 10일 비수도권 지역의 14개 시도 지사들이 국회에 집결했다.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발목을 잡힌 규제프리존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는 간담회를 연 것이다. 간담회를 주최한 허남식 지역발전위원장은 “규제프리존 특별법은 지역발전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 줄 법안”이라며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요청했다. 시도지사들도 규제프리존 법안이 통과되면 해외 투자 유치가 원활해지고,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키워 4차 산업혁명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주장이 과장만은 아니다. 전북 익산시 국가식품클러스터 지원센터는 이미 미 햄프턴그레인스를 비롯해 중국 러시아 베트남 등지의 11개 회사를 유치했다. 햄프턴그레인스는 농장을 운영하며 쌀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이용한 단백질 셰이크를 만들어 팔거나 전 세계에 곡물을 수출하는 회사다. 그동안 중국산 쌀을 재료로 썼지만 중국 내 환경오염이 심해지면서 익산 클러스터를 찾은 것이다. 국내 4대 쌀 생산지 중 한 곳인 호남평야를 끼고 있다는 입지적 매력에다 지원센터가 연구개발(R&D)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전폭적 지원을 약속한 것이 주효했다.

 지원센터는 규제프리존 법안이 통과되면 외국 기업을 더 많이 불러 모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지현 국가식품클러스터 지원센터 기획운영부장은 “외국 업체들도 규제프리존 법안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법안이 통과돼 특허 출원 과정이 간소화되고 세제 혜택 등이 도입되면 더 많은 업체가 익산 클러스터를 선택하고, 농·생명산업 발전도 탄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전자의약·바이오산업은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분야다. 셀트리온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바이오시밀러 약품인 ‘램시마’의 판매 허가를 받는 등 한국 의약계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어서다. 전 세계 제약시장 규모는 2014년 1237조 원에서 2020년 1560조 원 정도로 급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황우석 트라우마’로 인한 그물망 규제가 걸림돌이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검사 승인, 개발 후의 허가심사 등이 빠르게 이뤄지지 못해 실기(失期)하는 경우가 많다. 대전 대덕특구 내에 위치한 바이오기업 A사 대표는 “황우석 사태 이후 유전자 관련 규제가 강화돼 앞선 기술을 개발해도 검체 사용 승인, 허가 등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며 “규제프리존인 대전이라도 규제가 완화되면 유전자산업이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 ‘두뇌 유출’도 우려

 일각에선 현재처럼 정부와 정치권이 허송세월하다가는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각축전에서 완전히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실제로 미래창조과학부가 지난해 공개한 한국 미국 EU 일본 중국 등 5개국의 기술력에 관한 ‘2014년도 기술수준평가’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한국이 미래 먹을거리로 선정해 육성 중인 국가전략기술 120가지 가운데 1위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전체 기술수준도 세계 최고인 미국을 100으로 봤을 때 78.4에 불과했다. 중국과의 기술격차는 1년 5개월 정도면 추월당할 수준으로 조사됐다.

 더 큰 문제는 기술 개발을 이끌 이공계 인재들이 한국을 등지는 ‘두뇌 유출’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최윤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주력산업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신성장동력 창출마저도 지연되고 있다”며 “지역경제 활성화와 미래 성장동력 창출을 목적으로 추진 중인 정부의 규제프리존 정책이 신속하게 법제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박민혁 인턴기자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4학년
우종현 인턴기자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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