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 유치해 농업 되살리겠다”vs 한국 “대기업이 농사마저 삼키려해”

고승연 기자 , 장재웅 기자 , 한정우 인턴기자

입력 2016-09-23 03:00 수정 2016-09-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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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희비 쌍곡선/한일 현장 르포]<下> 韓日 농업 상반된 길

2014년 이후 11개의 농업법인이 들어선 효고 현 야부 시는 지역 특산물인 산초를 재배 가공해 유럽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 농부들이 산초를 채취하고(위쪽 사진) 농업 법인의 직원들이 산초를 가공하는 모습. 야부 파트너스 제공
 요즘 일본과 한국의 농업은 상반된 길을 가고 있는 모양새다. 일본은 “기업을 유치해 잃어가던 활력을 되찾겠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반면 한국에서는 여전히 기업의 농업 진출에 대해 “대기업이 농사마저 삼키려 한다”며 반발이 거세다. 이런 기류는 농업 관련 각종 규제 완화에 대한 정부 정책 방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이 농업 관련 규제 완화에 적극적이라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차이가 농업의 첨단 산업화에 큰 격차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 규제 풀고 비상하는 일본 농촌

 
일본 오사카(大阪) 국제공항에서 50인승 소형 프로펠러기를 타고 40여 분 날아가자 비행기 한 대가 겨우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다지마(但馬) 비행장이 나타났다. 이곳에서 다시 차를 타고 40분 정도 이동하자 계단식 산간 농업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 효고(兵庫) 현의 작은 마을 야부(養父) 시다. 이곳은 요즘 일본 농업 부활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인구가 줄고 활력이 사라졌던 이곳에 최근에는 일본의 대기업 오릭스가 투자한 농업법인을 포함해 11개의 농업법인이 새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는 아베 신조 정부가 규제 개혁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국가전략특구’ 전략에 따라 2014년 ‘농업특구’로 지정되면서 시작됐다. 이전까지 야부 시는 농민들이 쌀을 생산해 판매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해 생산성이 떨어지면서 ‘죽은 마을’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대거 마을을 떠나면서 2000년 3만 명이던 인구는 2015년 2만4000명까지 줄었다. 농업법인을 만들고 농산물 가공과 유통 사업화를 추진하려 해도 기업 출자한도 규제 등으로 쉽지 않았다. 법인의 임원 중 농사를 직접 짓는 사람이 최소 40%는 돼야 한다는 규정도 발목을 잡았다.

 
일본 정부가 2013년 국가전략특구 지정 사업을 추진하자 야부 시는 농업법인 설립 규제 완화를 요청했다. 2014년 야부 시가 농업특구로 지정되자 상황은 급반전됐다. 현재는 농사를 짓는 사람 한 명을 임원으로 두면 농업법인을 설립할 수 있다. 기업의 투자한도도 자본금 총액 기준 ‘50% 미만’으로 높였다. 그 결과 현재 야부 시에는 총 11개의 농업법인이 만들어졌고 60여 명이 일자리를 얻었다.

 경기가 살아나면서 외부 인구도 유입되고 있다. 야부 시가 직접 투자하고 민간이 운영하는 농업법인 ‘야부 파트너스’의 직원 4명은 모두 외지인이다. 오사카 등 대도시에서 온 청년들로 야부시의 특산물 중 하나인 산초를 유럽에 수출하고 있다.

 야부파트너스에서 플래너로 일하고 있는 쓰다 스나오(津田直) 씨는 오사카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다 야부 시로 옮겨왔다. 그는 “매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많지만 이탈리아에 야부 시의 산초를 수출하게 됐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며 “평범한 농산물에서 차별화된 스토리를 만들고 외국으로 수출하거나 대도시로 유통시키면서 비즈니스를 키워 나가는 재미가 크다”고 말했다.


○ 규제에 발목 잡힌 한국의 첨단 농업


 반면 한국의 농업은 각종 규제와 농민 반발로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9년까지만 해도 33%로 제한됐던 비농업인의 농업법인 출자 제한이 90%로 확대되는 등 일부 분야에선 규제 완화가 진행됐다. 하지만 여전히 농업법인의 임원 중 3분의 1 이상이 농민일 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등 규제는 많다.

 이에 따라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사업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농생명산업을 지역전략산업으로 육성할 계획인 전라북도가 대표적이다. 새만금 규제프리존에 기업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관련 법안 통과가 늦어지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북도는 새만금 지역에 대기업이 농업법인을 설립하거나 다른 농업법인을 인수할 경우 7년간 계열 편입을 유예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새만금 농생명 용지 임대기간을 최고 50년으로 늘려주고 농지 소유주가 규제프리존 내 농지를 농업 관련 사업자에게 빌려주거나 위탁경영을 맡기는 것도 허용할 방침이다. 하지만 규제프리존 특별법이 국회에 계류되면서 모든 계획이 중단된 상태다.

 첨단 농업 산업화의 또 다른 복병은 농민단체의 반발이다. 올해 초 LG CNS가 새만금 산업단지에 농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한 대규모 ‘스마트팜’ 단지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농민단체들의 반발에 밀려 결국 투자 철회를 발표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4년 전 동부팜한농이 토마토 스마트팜 사업을 추진하다 농민단체의 반발로 포기한 데 이어 두 번째다.

 김재민 농축식품유통경제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은 “기업의 농업 진출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잘 계획한다면 농민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기업과 농민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위해 기업들이 농업 관련 재단을 설립하거나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장학사업을 벌이는 등 실질적인 혜택을 주면서 교류를 확대해 나가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효고 현=고승연 seanko@donga.com/장재웅 기자
한정우 인턴기자 고려대 경제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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