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하지 않은 왜간장 이제 그만 먹을때 됐죠”

조종엽기자

입력 2016-09-06 03:00 수정 2016-11-2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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醬 관련 고금의 기록 총망라 ‘장보’ 펴낸 이한창씨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한 사무실에서 이한창 전 동덕여대 연구교수가 장이 담긴 독 앞에서 자신의 저서 ‘장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기록을 살피면 우리가 역사적으로 장을 얼마나 중요하게 다뤄 왔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맛이 좋은 감장(甘醬) 한 사발을 체에 걸러서 즙을 취하고 밀기울 4홉을 섞는다. 푸른 오이를 씻고 물기를 말린 뒤 여기에 섞어서 항아리에 담고 말똥 속에 묻어서 27일을 두었다가 쓴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규경(1788∼1856)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나오는 여름철 ‘즙장(汁醬)’ 만드는 법이다.

“즙장은 집장이라고도 하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졌어요. 통상 물을 타 걸쭉한 된장에 배추 같은 부재료를 넣은 뒤 항아리를 땡볕에 두고 삭혀 만드는데, 새콤하면서도 장의 독특한 감칠맛이 있지요. 보리밥하고 먹으면 참 맛있죠.”

장에 대한 고금의 기록을 망라한 책 ‘장보(醬譜)―동아시아 장의 역사와 계보’(따비)를 최근 펴낸 이한창 전 동덕여대 연구교수(88)는 지난달 30일 인터뷰에서 “즙장은 잘 다듬어 현대화되면 좋았을 텐데, 이제는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책은 1000쪽이 넘어 ‘베고 자도’ 좋을 만한 분량이다. 고서 사전 의약 구황 제조 동남아 편으로 나누어 주례(周禮)부터 조선왕조실록까지 한중일의 고서와 논문 등 351편에서 장에 대한 기록을 뽑았다. 장에 대한 기록이 그렇게 많을까 싶지만 19세기 중엽에 조선에서 나온 저자 미상의 ‘군학회등(群學會騰)’에만 장 담그는 법이 28가지나 나온다. ‘장의 나라’를 자처하지만 막상 현대에 즐겨 먹는 장은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 쌈장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장은 놀랄 만큼 다채롭다.

이 전 교수는 1959년부터 국내의 한 간장 회사에서 연구부장으로 일하며 양조간장을 개발했다. 이후 대학에서 발효학을 가르치다가 은퇴하고 2000년경 이 책을 구상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서울대 규장각을 비롯해 전국의 도서관을 다니며 10년 동안 각종 자료를 1000편 이상 모았다.

장 문화는 동아시아 전역에 걸쳐 발달한 것이어서 한글과 한문, 일본어 자료를 고어(古語)까지 독해하는 게 특히 어려웠다. 이 전 교수는 “장은 동아시아 식문화의 중심”이라며 “그러나 막상 장의 역사가 담긴 문헌을 정리해 놓은 책이 없는 것을 보고 집필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실록에서도 장 관련 기록을 적지 않게 발견했다. 태조 때부터 장 관련 기록이 등장한다. 이 전 교수는 특히 ‘궁중에 장을 담당하는 부서(시전장·試典醬)가 있었다’(정조실록) ‘장이 군복을 염색하는 염료(포염장·布染醬)로 쓰였다’(영조실록) ‘뜸을 뜨는 데(장지구·醬之灸) 쓰였다’(숙종실록) 등의 기록에 주목했다. 그는 “우리 문헌에는 중국 일본에서 쓰이는 장유(醬油)라는 단어가 전혀 안 나온다”며 “한국의 장 문화는 독자적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염산으로 단백질을 분해한 뒤 가성소다를 넣어 만드는,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산분해간장’(왜간장)이 우리 간장 시장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1950, 60년대까지만 해도 집에서 담근 간장은 비위생적이고, 비과학적이라고들 생각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아주 잘못된 생각이지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발효를 하지 않은 간장은 장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제 그만 먹을 때가 됐어요.”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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