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대기업行 1주일 남기고 ‘시늉 심사’… 100% “문제없음”

강경석기자

입력 2016-08-08 03:00 수정 2016-08-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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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법관 취업심사 유명무실

삼성, LG 등 대기업이 고위 법관 출신을 임원으로 채용하는 사례가 최근 늘고 있다. 단순히 전관 출신 변호사를 수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원으로 채용해 해당 기업의 법률 소송을 자문하는 다른 형태의 전관예우가 생겨나기 시작한 셈이다.

편법을 막고 퇴직 공직자의 취업 제한을 강화하기 위해 이른바 ‘관피아 방지법’으로 불리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2014년 국회를 통과했지만 고위 법관에 대한 전관예우 심사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큰 문제는 뒷북 심사다. 취업 심사 제도에 따라 취업 제한 대상 기관에 취업할 수 있는지 사전에 심사해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취업한 지 1년 넘게 지난 뒤에야 심사가 이뤄지는 사례도 나타났다.

대법원공직자윤리위원회가 2012년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심사한 18건 중 취업일 이후 심사가 이뤄진 건 모두 8건에 이르렀다. 수원지법 출신 고위 법관이 2011년 1월 퇴직해 같은 해 3월 ㈜부국증권 고문으로 취업했지만 취업 심사는 1년 뒤인 2012년 3월에야 이뤄졌다. 하지만 심사 결과가 취업 제한 대상이 아니라고 나왔으니 문제가 없다는 식이었다. 의정부지법 출신 법관도 2012년 3월 ㈜한진해운 사외이사로 취업했지만 정작 심사는 1년 뒤인 2013년 3월에 받았다. 그나마 취업일 전에 심사를 받은 경우도 보통 취업을 일주일 남겨 놓고 이뤄진 게 대다수였다.

재취업 승인 비율이 100%에 이르는 것도 논란거리다. 공직자윤리법에는 밀접한 업무 관련성의 인정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가 취업하려는 기업의 업무와 관련이 있다면 막겠다는 취지에서 만든 조항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기업 상무로 취업한 법관의 경우 해당 기업의 소송에 대해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임원 취업을 승인한 셈이다. 올해 2월 퇴임한 박홍우 전 대전고등법원장에 대해서는 ‘판결 업무가 아닌 사법 행정 업무만 다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라며 취업 제한 대상인 대형 로펌의 고문 변호사 취업을 승인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심사 결과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돼 있지만 아직까지 한 건도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깜깜이 심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대법원 측은 “인터넷 공개와 관련된 법과 규칙이 지난해 6월 신설돼 이전 심사는 공개하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이후에 이뤄진 심사는 내년 초 일괄적으로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올해 1월부터 퇴직 공무원 취업 심사 결과를 매달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어 비교된다.

국회 관계자는 7일 “퇴직 공무원이 재취업해 문제가 되는 것은 전관의 인맥과 영향력을 동원해 전관예우를 받기 때문”이라며 “직접 소송 업무를 담당하지 않더라도 전관예우의 통로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면 좀 더 엄격하게 심사하는 게 법 취지에 맞다”라고 말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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