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미래에 투자하는 기업가 50명은 있어야 한국이 산다”

서영아 특파원 , 장원재 특파원

입력 2016-08-06 03:00 수정 2016-08-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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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무역 광풍… 오마에 겐이치에게 길을 묻다

세계적인 경영사상가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오마에 겐이치 일본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총장은 “세계적인 보호무역 광풍 속에서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용기와 혁신적 마인드를 가진 기업가가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나 미국 대선전처럼 앞으로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을 지향하며 민주주의가 한계에 부닥치는 사례가 여기저기서 나올 것입니다.”

일본 도쿄(東京)의 사무실에서 최근 만난 세계적 경영사상가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73)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총장은 앉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많은 나라에서 포퓰리즘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민주주의는 유권자에 대한 교육을 전제로 하는데 교육 없이 투표만 하면 가장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선거에서 이기게 된다”고 말했다.

오마에 총장은 “나는 저널리즘의 쇠퇴가 최대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멋대로 하려는 정부, 정치인을 엄격하게 검증하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을 봐도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말하는 것에는 진실성이 전혀 없는데 그걸 제대로 보도하지 않습니다. 뉴욕타임스 등에서 트럼프를 비판하지만 그 정도로는 안 됩니다. 그가 얼마나 거짓말쟁이인지 낱낱이 밝혀야 합니다. 트럼프는 이민을 막자고 하는데 지금까지 본인의 배우자 3명 중 2명이 이민자 아닌가. 적당히 좀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민주당 경선 후보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공립대 등록금 면제 등 재원 마련 대책이 없는 무책임한 공약을 내놨습니다.”

미국 대선에 대해 일본이나 한국 등 주변국 최대의 관심은 민주 공화 양당 모두 보호무역 기조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 전문가인 그와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세계 자유무역 체제의 미래로 이어졌다.


―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끝났다고 본다. 트럼프는 당선되면 TPP를 탈퇴하겠다고 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다시 협상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협정 내용을 뜯어보면 재협상이 불가능하게 돼 있다. 회원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들이 서명해야 발효가 되는데, 이는 미국(60%)과 일본(18%)이 모두 동의하지 않으면 발효될 수 없다는 뜻이다. 미국만 반대해도 안 된다. 일본은 미국이 하지 않으면 먼저 나서지 않을 것이다.”


― 미국이 앞장서 보호무역을 주창하면 일본도 피해가 크지 않을까.

“40년 이상 비즈니스 세계에 있으면서 언제나 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을 봤다. 하지만 보호무역주의라고 해도 반드시 피해 나갈 길이 있다. 미일 무역전쟁 때 미국은 TV, 자동차, 철강 등 각종 상품의 관세율을 높이고 수량 제한(쿼터)을 정해 수출량을 줄이도록 압박했다. 플라자 합의 등으로 엔화 강세를 유도하면서 한때 달러당 360엔이던 환율이 80엔으로 떨어졌다. 달러로 받는 무역 대금이 4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그래도 현지 생산과 혁신으로 살아남았다.”


― 한국의 경우 무역 의존도가 높아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걱정하는 건 당연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그걸 극복하면서 글로벌 기업이 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나라에서도 사업을 한다는 결기를 가진 경영자만이 글로벌 기업을 만들 수 있다. 도요타자동차는 1980년대 초 9000달러에 팔던 자동차 ‘코롤라’의 가격을 1980년대 말에는 3만5000달러로 올렸다. 그래도 혁신을 더해 판매량을 유지했다. 현지 생산도 확대해 지금은 세계 51곳의 공장 물량을 조정하며 환율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00원 내려간다고 큰일 났다고 할 정도라면 글로벌 기업이 되기 어렵다. 한국 기업은 아직 거점을 한국에 두고 부품을 중국에서 만들어 부산에서 수출하는 모델이 많다. 이는 글로벌화의 첫 단계에 불과하다. 다음 단계로 가려면 40대 시절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같은 기업가가 50명은 있어야 한다.”

그는 ‘경제가 성공하면 원화 가치가 높아져 점점 더 괴로워진다’는 ‘중진국의 딜레마’ 얘기를 꺼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정말 무역으로 살아남고 싶다면 원화 가치는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성공의 대가이고 이를 극복하려면 혁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국내에서 생산하는 물량만큼의 생산기지를 해외에서 구축할 정도로 용기 있는 사람이 계속 나와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는 쓴소리도 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와 관련해 오마에 총장은 “선출된 이들에게 결정을 위임하는 간접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한 나라에서 갑자기 국민투표를 하면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다”며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국민투표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는 “스위스처럼 직접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는 중요하지 않은 것도 반드시 투표로 정한다. 커뮤니티 안에서 교사를 결정하는 것도 투표로 정한다. 그리고 국민이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 공부를 많이 한다. 최근 (매월 약 300만 원을 준다는) 기본소득 방안이 부결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영국이 EU 이탈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영국인이 얼마나 간단히 과거를 잊는지 놀랐다. EU가 출범하기 전 영국은 실업률이 17%에 달하는 비참한 상황이었다. 경영자들은 패배주의에 빠져 있었고 미국, 일본과 경쟁하겠다는 의지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영국은 대단하다. 경제가 번영하고 실업률은 40년 동안 가장 낮은 수준이다.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가장 좋은 상태다. 그것은 EU에 있으니까 그런 것이다. EU를 이탈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한국에 ‘헬 코리아’라는 말이 있다고 들었는데 영국이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헬 잉글랜드’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 EU를 떠나겠다는 것이 영국 국민의 선택이었는데….

“많은 영국 국민이 지금 후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이 EU를 떠나면 먼저 스코틀랜드가 독립을 선언할 것이다. 2년 전 스코틀랜드 독립투표에서는 아슬아슬하게 ‘잔류’를 선택한 쪽이 더 많았다. 이유 중 하나는 독립 후 EU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EU에 가입하려면 28개 회원국이 모두 찬성해야 하는데 영국은 독립한 스코틀랜드의 가입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그게 억지력으로 작용했다. 이번에 영국이 나가 버리면 반대할 나라가 없어지기 때문에 스코틀랜드 독립파가 이길 것이다. 그러면 웨일스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로 통합하려는 이들과 영국에 남으려는 이들이 대립하면서 다시 내전 상태가 될 수 있다. 어떤 경우라도 그레이트브리튼 자체가 붕괴할 가능성이 100%다. 이런 상황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것이다.”


― 왜 영국이 EU 이탈을 선택했다고 보나.

“EU가 지나치게 세부적인 것까지 결정하려 했다. 부모가 자녀에게 오후 9시까지는 들어오라고 하거나, 화장을 그만두라고 하면 듣기 싫은 것과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간섭하니 자유롭게 해 달라, (영국 독립당의) 나이절 패라지 전 대표는 그 점을 강조했다. 또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감정의 문제도 있었다. 영국은 일자리가 많고 영어를 쓰기 때문에 헝가리, 루마니아 등에서 이민자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현재 영국의 실업률이 5%인 것을 보면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반면 브렉시트 반대파는 논의 진행 방식이 너무 서툴렀다. 영국 자체가 분열되고 붕괴할 수 있다는 얘기 대신 이민·난민의 손해가 어느 정도라든가, 시티오브런던(런던의 금융 중심지)의 금융회사들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갈 거라든가 하는 얘기뿐이었다.”


― 일본 기업 1380곳이 영국에 진출해 있다. 영국이 유럽 진출의 거점이 된 이유가 있나.

“40년 넘게 전략 컨설팅을 하며 일본 기업의 유럽 진출을 조언해 왔다. 당초 일본 기업들은 유럽에는 국가별로 투자를 했다. 그런데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투자는 모두 실패했다. 근로자들의 작업 태도가 좋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지만 정부가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움직이고 회사 경영에 간섭을 했다. 독일은 나뉘어 있을 때는 시장이 작았다. 지금은 실업률이 낮아 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구해도 모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영국이 EU에 들어간 후 EU 전체라는 거대 시장에 대한 투자를 영국에 집중했다. 영어를 쓰니 사원 교육과 관리가 쉽다는 이점도 있었다. 영국도 처음에는 공장의 불량률이 6, 7%에 달하는 등 여건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근로자들을 일본에 불러 공장 연수를 시키는 등 교육을 해 약 5년 만에 일본 공장과 같은 수준의 품질 관리를 할 수 있게 됐다. 닛산의 영국 공장은 세계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지금은 일본 전자업계가 어렵지만 예전에는 소니, 파나소닉 등도 영국 웨일스에 대규모 공장을 지어 성공을 거뒀다.”

마지막으로 오마에 총장은 EU를 이탈한 영국의 미래에 대해 “지금만큼 좋은 조건을 유지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은 지금 EU에서 좋은 점만 취하고 있어요. EU에 가입해 있지만 통화는 파운드를 사용합니다. 국내총생산(GDP)은 프랑스보다 높지만 분담금은 프랑스보다 적게 냅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미국 쪽으로 접근하면서 응석을 부리지요. 영국은 원래부터 EU와 친한 사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나도 예전에 책에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 해협이 대서양보다 넓다’는 표현을 쓴 적도 있습니다.”


 

○ 오마에 겐이치 총장은…

1943년 일본 후쿠오카 현 출생. 일본 와세다대, 도쿄공업대 원자핵공학 석사를 거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원자력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적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 입사해 일본지사장, 아시아태평양지역 회장을 지내며 글로벌 기업 및 역내 주요 국가와 도시의 자문역으로 활동해 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1994년 그를 피터 드러커, 톰 피터스 등과 함께 세계 5대 ‘경영 구루(사상가)’로 선정했다. 2010년 인터넷으로 경영학 교육을 하는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를 설립해 인재 양성에 힘 쏟고 있다.
 

도쿄=장원재 peacechaos@donga.com·서영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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