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돌아온 양수경 컴백 후 첫 인터뷰~ “이제 다 얘기할게요”

여성동아

입력 2016-08-05 09:31 수정 2016-11-23 16:18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묻는 말엔 막힘이 없었지만, 애써 묻고 싶지 않았다.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았다.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진심을 전했던 여자 양수경이니까.

롱드레스는 모조에스핀. 구두는 이로스타일.

귀에 익은 곡의 전주가 나오자 밝은 조명 아래 그녀가 등장했다. 관객은 리듬에 맞춰 박수로 화답했고 그 사이 노래를 부르던 그녀의 목소리는 살짝 떨렸다. 먹먹해진 가슴을 손으로 부여잡았지만 눈물은 기어코 참아냈다.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 ‘사랑은 차가운 유혹’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 등 1990년대를 풍미한 히트곡들의 주인공인 양수경(49)이 얼마 전 KBS 〈불후의 명곡〉에 ‘전설’로 등장했다. 그녀가 가수로서 다시 무대에 선 것은 거의 20년 만이다. 화려한 드레스 차림의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깊어진 눈매와 아련한 목소리에선 시간의 흔적이 묻어났다.

컴백 후 첫 화보 촬영을 겸한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그녀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지난 7월 9일 미니 앨범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컴백을 선언한 후,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촬영을 위해 모인 스태프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배꼽 인사를 건넬 때는 데뷔 30년이 다 되어가는 원조 한류 스타라기보다 이제 막 데뷔를 한 신인의 모습에 가까웠다. 오랜만에 마주한 카메라를 어색해하면서도 “이건 어떨까요?” “한 번 더 가볼게요” 하며 의욕을 보였다. 화려하게 무대를 주름잡았던 20대 양수경의 모습이 비쳤다.

양수경으로 말할 것 같으면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를 주름잡은 톱 가수다.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 동남아, 러시아에서도 남부러울 것 없는 인기를 누려 원조 한류 스타로 불리기도 한다. 그랬던 그녀가 연예계를 떠난 것은 데뷔 10년을 맞았던 지난 1998년. 자신의 소속사 예당의 변대윤 대표와 깜짝 결혼을 발표하고는 연예계를 떠났다. 그녀와 결혼한 변 대표는 대한민국 음악계에 한 획을 그은 입지전적 인물로, 서태지와 아이들, 룰라, 듀스, 이정현, 싸이 등을 배출해낸 한국 대중음악의 미다스 손이다. 결혼과 함께 무대에서 사라졌던 그녀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2013년. 남편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장례식장에서 오열하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된 게 전부다.

홀로 남겨진 그녀는 남편의 채무와 회사 경영, 상속 등에 관한 복잡한 문제에 휘말렸다. 세상은 기다렸다는 듯 가수 양수경보다는 미망인이 된 ‘사모님’ 양수경에 대한 관심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입장을 애써 밝히지 않았다. ‘하와이에 거주한다더라’ ‘아이가 둘이라더라’ ‘숨겨둔 재산이 엄청나다더라’ 하는 추측들만 난무했다.

“다 얘기해줄게요.”

그간 자신에게 쏟아졌던 사람들의 호기심을 너무나도 잘 아는 탓이었을까. 인터뷰를 채 시작하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말했다. 처연한 표정의 그녀를 보니 얼마 전, 금방이라도 왈칵 눈물을 쏟아낼 것 같다가 애써 참은 채 무대에서 끝까지 완창하던 그녀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준비했던 질문지를 덮고 “저는 그걸 다 기사로 담아내지 못할 거 같아요”라고 답했다. ‘그저 지난 세월이 빗물 같다’(‘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의 가사 中)던 그녀의 노랫말이 떠올라서다. 그녀와의 허심탄회한 대화는 감격스러웠던 복귀 무대에 대한 이야기부터 풀어나갔다.



▼ 오랜만에 가수 양수경으로 무대에 선 소감이 어떤가요.
녹화가 있기 며칠 전부터 잠을 못 잤어요. 설레고, 걱정돼서요.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던 부분들로 주목을 받았던 터라 내가 오롯이 가수 양수경으로 비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컸죠. 〈불후의 명곡〉 무대는 지금껏 제게 일어난 일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데뷔 무대나 시상식 무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간절히 바라왔던 일이었으니까요.


▼ 거의 20년 만의 무대인데도 음색에 변함이 없더라고요. 아련한 느낌도 좋았고요.
제가 본격적으로 컴백을 준비한 건 작년 부터예요. 많이 망설이다가 “추억팔이 하는 가수로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지금의 소속사 대표와 계약을 맺었죠. 이번에 발매한 미니 앨범에 들어갈 곡을 받으려고 조관우, 바비 킴, 린의 곡을 쓴 작곡가 하광석 씨를 찾아갔어요. 노래를 하고 함께 식사를 하는데 대뜸 “그렇게 노래해놓고 밥이 넘어갑니까?” 하더라고요. 이 상태론 곡을 못 주겠다면서요. 그래서 성악가이자 보컬 트레이너인 임준식 교수님의 도움으로 8~9개월가량을 꼬박 연습하고서야 제 목소리를 다시 찾을 수 있게 됐어요. 소속사 대표와 하광석 작곡가, 임준식 교수까지 이 세 분이 아니었다면 가수 양수경으로 다시 돌아올 순 없었을 거예요.


▼ 갑자기 컴백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뭔가요.

사실 여러 번 하려고 결심 했었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힘든 상황들이 생겨 매번 좌절됐죠. 몇 해 전 남편을 떠나보내고 나서는 한동안 폐인처럼 생활했어요. 그러다 2년 전쯤 여의도에 갔다가 우연히 〈불후의 명곡〉 PD를 만나게 됐어요. 멀리서 저를 보고는 90도로 인사하면서 “꼭 한번 모시고 싶다”고 했는데 그 순간 ‘아, 내가 가수였지’라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요. 그땐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동안 잊고 살았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죠.


▼ 그토록 그리워했던 가수의 자리를 왜 떠났던 거예요.
그땐 밤마다 행사를 다니는 일이 너무 지겨웠어요. ‘다시는 돈 때문에 노래하지 않겠다’면서 가지고 있던 무대 의상들도 전부 다 처분했죠. 기념으로 남겨둔 반짝이 의상 딱 한 벌만 빼고요. 그렇게 3~4년쯤 지났을까요.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무대가 그리운 거예요. 해마다 연말이면 그 반짝이 의상을 부여잡고 울었어요. 시상식 무대에 섰던 제 모습을 떠올리며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저긴데…’ 라고 생각했던 거죠. 양수경이라는 사람이 없어져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재킷 개인 소장품. 구두 이로스타일.


▼ 이번 컴백 무대를 보고 주변에선 많이 축하해주던가요.
주변이요? 남편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지고 나서 제 곁엔 아무도 남지 않았어요. 그 사람이 있을 때와 없을 땐 정말 다른 세상이었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게 두려웠고 말을 꺼내기가 무서웠어요.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집 밖에 거의 나가지를 못했어요. 지금 제 곁에 남은 사람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사귀게 된 평범한 주부들이에요. 우리 아들의 첫사랑 여자아이의 엄마, 유치원 3세 반에 다닐 때 체육대회에 갔다가 만난 엄마들. 은행 업무 하나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저를 도와준 것도 다 이 친구들이에요. 축하요?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이야기지, 이 사람들은 저와 함께 울어줬어요. “고생했다, 앞으론 다 잘될 거야” 하면서요.


▼ 화려할 줄 알았던 양수경도 오롯이 엄마로 살았나 보네요.
그렇다고 제가 평범한 주부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늘 ‘난 가수 양수경이야’라는 생각을 품고 살았으니까요. 사람들은 다 똑같다고 얘기하지만 전 그게 마음에 안 들었어요. 가수가 일반 사람들과 똑같으면 어떻게 모든 이들이 바라보는 특별한 무대를 만들 수 있겠어요? 전 아이들 뒷바라지를 할 때도 ‘유난스럽다’고 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어요. 밤새도록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다 손톱에 크레파스가 낀 채로 잠든 적도 많았고, 아이를 둘러 업고 꼭두새벽부터 스케이트장에 다니기도 했죠. 아이를 전교 회장까지 만든 건 제 자랑거리였죠. 그렇게라도 해야 ‘최선을 다했던 가수 양수경’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 수경 씨를 둘러싼 추측들이 엄청 많아요. 어떤 기사엔 아이가 한 명이라고 하고, 어떤 기사엔 둘이라고 해요. 누구는 셋이라고 하고요. 진실은 뭐고, 왜 그동안 나와서 사실을 밝히지 않았나요.
남편과 결혼해 아들 하나를 낳았고, 2003년쯤엔 하와이로 건너가 7년을 살았어요. 그땐 공황장애를 심하게 겪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었죠. 마치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몇 년간의 기억이 좀처럼 나지 않아요. 한 발자국 떼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 겨우 몸을 추슬렀는데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됐어요. 그 후 조카 두 명을 입양해 지금은 세 아이의 엄마가 됐죠. 제겐 이 아이들이 전부예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 넷, 렌터카 내비게이션만 믿고 살자”고요. 그때 일기장에 제가 이렇게 썼더라고요. ‘잠든 세 아이를 눕히고 미친 여자처럼 밤하늘만 바라본다.’ 그게 나였어요. 그동안 기자들을 만나지 않은 건 이 모든 일의 이유를 궁금해하니까. 당사자인 나는 너무나 가슴이 아픈데 사람들은 그걸 가십거리로 흘려버리는 걸 너무 잘 아니까. 말이 또 다른 말을 낳게 되는 게 싫어요. 지금껏 기사에 나온 내용 중 제 입에서 나간 이야기는 단 하나도 없었어요. 억울하고 분한 적도 많았지만 제 바람은 오직 아이들이 잘 크는 거였죠.

그녀가 말한 ‘기자들’ 중 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미안했다. 호기심을 위해 더 캐묻는 것은 그녀가 견뎌온 세월과 힘겹게 꺼낸 용기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 말 없이 덤덤한 듯 노래하는 그녀를 그저 이해하고 싶었다.

민소매 블라우스, 팬츠 모두 딘트.


▼ 연예계를 떠나 있는 동안에는 어떤 음악을 들었나요.
사실 TV를 거의 보지 않았어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요. 그래도 가수들의 콘서트는 꾸준히 보러 다녔어요. 언젠가 다시 저 자리에 서겠다는 꿈이 있었으니까요. 최근에는 라틴 음악에 푹 빠져 있어요. 유튜브에 저장해둔 영상들도 죄다 라틴 음악과 관련된 것들이죠. 대놓고 섹시하진 않지만, 묘하게 끌리는 그런 느낌 있잖아요.

▼ 이번 앨범에도 양수경의 취향이 담겼나요.

얼마 전 발매한 미니 앨범엔 신곡 ‘사랑 바보’와 함께 히트곡들을 재해석한 노래들이 담겨 있어요. 내지르거나 기교를 부리지 않고 최대한 담담하게 부르려고 노력했죠. 저는 음악도 사람도 겉으로 내세우기보다는 간결하고 담백한 게 좋아요. 들어주시는 분들도 다른 군더더기 없이 오롯이 음악만으로 평가해주셨으면 좋겠고요. 요즘은 한창 베스트 앨범을 녹음 중인데 아마 9월쯤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 예전에 활동했던 때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텐데 힘들진 않나요.

시스템을 잘 모르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요(웃음). 그땐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이던 양수경이었으니까요. 시대는 물론 바뀌었겠지만, 가수가 사랑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음악적인 색깔이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흐름에 따르기보다 제가 트렌드를 만들어가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흐름만 쫓아간다면 결국 시대에 박제되는 가수로 남는 거잖아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추억팔이 하는 가수로 남고 싶진 않아요.

인터뷰 말미, 어떤 가수로 남고 싶은지 묻자 그녀는 ‘목소리가 예쁜 가수’를 꼽았다. 목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눈을 감고 가만히 듣다 보면 그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다고도 했다. 미처 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은 자신의 노래에 담겨 있다면서.

메이크업 · 오철수(새리미용실 02-514-0721)
스타일리스트 · 박성연
장소협찬 · 티오씨팩토리(02-2097-7540)
의상협찬 · 딘트(3442-0151) 모조에스핀(514-9006) 이로스타일(1644-1591)

글 · 정희순 | 사진 · 지호영 기자 | 디자인 · 김영화 | 헤어 · 에바(티지헤어 02-792-2 042)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