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수 어렵게 현금 지급… 박원순 ‘복지논쟁 주도’ 정치행보

강승현기자, 김호경기자 , 황태호기자

입력 2016-08-04 03:00 수정 2016-08-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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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청년수당 기습 지급]서울시-복지부 ‘强대强 싸움’

서울시가 3일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 첫 활동비를 지급하면서 보건복지부와 서울시 양쪽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시작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이 국무회의에 참석한 바로 다음 날인 이날 오전 9시 30분경 전격적으로 총 14억 원이 넘는 현금을 대상자들에게 지급했다. 청년수당을 밀어붙이겠다는 박 시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정 명령과 직권 취소 등 복지부의 움직임도 지방자치단체 사업에 대한 정부의 행동으로는 이례적으로 강경하고 신속하다. 총예산 규모가 고작 90억 원에 불과한 복지사업이 정부와 지자체의 유례없는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 국무회의 ‘배수진’ 삼은 서울시

박원순 서울시장이 2일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청와대 영상회의실에 들어서고 있다. 박 시장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역점 사업인 청년수당 시행을 역설했으나 실패하자 3일 기습적으로 수당 지급을 강행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년수당은 지난해 11월 5일 서울시 발표 직후부터 정부의 강한 비판을 받았다. 발표 나흘 뒤에는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가 “명백한 포퓰리즘적 복지사업”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후 복지부의 협의 요청과 재의 요구, 서울시의 재고 요청, 복지부의 부동의 의견 통보 등 수차례 공방이 오갔다. 서울시의회의 청년수당 예산안에 대한 복지부의 의결 무효소송 등 법적 다툼도 이미 두 건이나 진행 중인 상태다.

올 3월 가까스로 협의를 시작한 양쪽은 6월 초 서울시가 복지부의 의견을 수용한 수정안을 내놓으면서 극적으로 타협점을 찾는 듯했다. 양측은 지속적으로 협의를 진행해 사실상 합의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정부와 지자체의 성공적 ‘협치’ 사례가 될 것이라는 기대까지 받았다. 하지만 갑자기 복지부 내부의 분위기가 바뀌면서 이때까지 협의 과정이 모두 물거품이 됐다. 동시에 양측의 공식적인 대화도 완전히 중단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전향적인 수정안을 마련했고 복지부로부터 수용 통보도 받았는데 언론 보도 후 갑자기 복지부가 입장을 바꿨다”고 말했다. 실제로 복지부는 서울시에 수정안에 대한 수용 의사를 전달했으나 청와대가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서자 갑자기 입장을 뒤집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복지부는 “당시 협의를 완료한 적이 없다”는 의견이다.

이 때문에 박 시장이 2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청년수당 사업에 대한 정부의 동의를 직접 요구한 것은 강행을 염두에 둔 ‘배수진’이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박 시장은 국무회의 직후 “절벽을 마주한 느낌이다. 답답함과 불통의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복지부 협의 당시 서울시가 대안 중의 하나로 언급한 ‘체크카드’가 아닌 환수하기 힘든 현금으로 지급한 것도 서울시의 강경 기류를 반영하고 있다.

복지부는 “시정 명령이 내려진 만큼 이미 지급한 수당도 당연히 환수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직권 취소는 물론이고 만에 하나 법원에서 패소하더라도 활동비를 지급받은 청년 입장에서는 귀책사유가 없다”며 환수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 ‘지방자치권 침해’ vs ‘포퓰리즘’

청년수당을 둘러싼 정부와 서울시 간 대립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지방자치권 침해’와 ‘사회보장기본법 위반’ 여부다. 전효관 서울시 혁신기획관은 “청년수당은 헌법상 명백한 자치 사무이며 복지부의 방침은 명백한 지방자치권 침해”라고 밝혔다. 반면 복지부는 “사회보장기본법에 따라 복지부와 협의가 끝나지 않은 사업은 사회보장위원회의 ‘조정’ 절차를 이행해야 하지만 서울시는 이를 건너뛰고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며 사회보장기본법 위반이라고 반박했다. 양쪽의 주장은 4일 예정된 복지부의 직권 취소 후 서울시가 대법원에 제소하면 추후 판가름이 날 것으로 전망된다.

지방자치법 169조에는 ‘지자체장의 명령이나 처분이 법령을 위반하거나 현저히 부당해 공익을 해친다고 인정되면 주무 부처 장관이 서면으로 시정할 것을 명하고, 이행하지 않으면 이를 취소하거나 정지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복지부의 시정 명령 및 직권 취소 근거다. 반면 서울시는 “법령 위반을 한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시정 명령 자체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수혜자의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수 있는 ‘포퓰리즘’ 사업인지가 두 번째 쟁점이다. 서울시는 경기 성남시의 ‘청년배당’과 달리 ‘선별적 지원’이라는 점을 들어 인기영합 정책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성남시의 청년배당은 소득 직업 재산 등에 관계없이 성남에 거주(3년 이상)하는 만 24세 청년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지만 서울시는 자격 요건이 상대적으로 까다롭다. 서울에 거주(1년 이상)하는 만 19∼29세 청년 중 근무시간이 주 30시간 미만인 사람만 지원이 가능하며 저소득층과 장기 미취업자를 우선 선발한다.

하지만 복지부는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강완구 복지부 사회보장위원회 사무국장은 “우려했던 무분별한 현금 살포가 현실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서울시의 수정안에 대해 긍정적 의사를 표시했던 복지부가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에 대해 해명은 하지 않고 무작정 반대 논리만 내세우고 있는 것도 문제라는 의견이 많다. 일각에서는 청년을 볼모로 야권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박 시장과 정부 여당이 이념 정쟁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태호 taeho@donga.com·김호경·강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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