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CEO, 뭣이 중헌디!

박용 경제부 차장

입력 2016-07-18 03:00 수정 2016-07-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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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 서울 중구 소공로 우리은행 본점에서 열린 ‘위비뱅크 1주년 기념식’에서 위비뱅크 캐릭터 ‘위비’를 품에 안으려고 다가가는 이광구 우리은행장 모습. 우리은행 제공
박용 경제부 차장
이광구 우리은행장(59)은 2014년 말 취임할 때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낙하산’이라는 혹독한 비판을 들었다. 1979년 우리은행의 전신인 상업은행에 입행해 35년간 한 우물을 파 부행장에까지 오른 ‘전략통’이었지만, 그의 전문성과 경력은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를 나왔다는 사실에 푹 파묻혔다.

최근 이 행장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그때와 비교해 꽤 온도 차가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적극적이고 강단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우리은행을 인수해줄 투자가를 찾기 위해 직접 해외 기업설명회(IR)에 나서고, 은행에 부정적인 신용평가사를 찾아가 설득하는 돌파력을 보였다. 이전 은행장들이 보여주지 못했지만 우리은행의 수장에게 기대하던 그 모습이다.

성동조선해양, STX조선해양 등 부실기업에 대한 추가 자금 지원은 단호하게 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행장은 지난해 5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성동조선 추가 지원 관련 간담회에 참석해 “내가 전문가라서 잘 안다. 돈을 더 대주더라도 살아나긴 어렵다. 이미 거액을 떼인 회사에 추가로 돈을 더 대준다면 배임에 해당한다. 누가 책임질 거냐”고 맞섰다. 그는 “자금 지원을 거절하면 성동조선 노동조합에 몰매를 맞을 터이고, 자금을 지원하면 우리은행 노조가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차라리 은행을 지키고 순직하겠다”며 주변 참모들을 다독였다. 그의 행보가 얼마나 아슬아슬해 보였는지, 한국에 수십 년간 투자를 해온 한 외국인투자가는 IR에서 만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아직도 살아 있네요?(Are you still alive?)”

우리은행의 자산 건전성과 실적이 개선되면서 증권가에서 ‘과거의 우리은행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보고서까지 등장했다. 우리은행이 인터넷전문은행인 ‘K뱅크’에 참여하고 위비톡, 위비뱅크 서비스를 만들어 핀테크(금융기술)를 통한 사업 다각화에 나선 것도 ‘이광구 시대’의 변화다. 이달 말에는 과점주주 방식으로 우리은행 매각이 다시 진행될 예정이다.

이 행장이 성공한 최고경영자(CEO)가 될지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우리은행이 시장의 품으로 돌아가고, “이젠 금융회사가 아니라 정보기술(IT) 회사”라고 선언한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처럼 새로운 금융회사로 변신한다면 긍정적인 평가가 나올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세간의 시선은 또 달라질 것이다. 그것이 기업 경영이고, CEO의 숙명이다. 시장은 ‘CEO가 낙하산이냐 아니냐’보다 ‘성과를 낼 실력이 없느냐, 있느냐’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정권 말이면 공무원들의 복지부동과 낙하산 보은인사 논란이 반복된다. 고위 공무원들이 난파선과 같은 현 정권과 엮이지 않으려고 발을 빼기 시작하면서 권력의 바깥으로 쏠리는 원심력이 강해진다. 세종시 관가에는 ‘남행열차’(‘남’다른 ‘행’동과 ‘열’정으로 ‘차’기 정권에서도 살아남자)라는 ‘레임덕 건배사’가 다시 등장했다고 한다. 공무원들이 ‘남행열차’를 타느라 정신이 없을 때 현 정권이 끝나기 전 막차라도 올라타려는 사람들의 ‘줄 대기’도 극심해진다.

KDB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있는 대우건설에도 최근 낙하산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10일 대우건설 사장추천위원회가 구성돼 2명의 후보를 선정하고 프레젠테이션까지 했지만 무효가 됐다. 다시 사장 공모가 진행돼 지난주 2명의 후보로 압축됐다. 대우건설 노동조합 등은 “사추위 결정이 무효화되고 재공모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특정 후보를 염두에 둔 것”, “매출의 40%가 해외 플랜트 현장에서 발생하는데 국내 주택시장 전문가가 맞는가”라며 특정 인사를 겨냥한 낙하산 인사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13일 열린 사장 후보 면접에서는 사추위 위원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진통도 있었다고 한다.

문제는 낙하산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새 CEO가 어려운 회사를 되살릴 강단과 난관을 극복할 탄탄한 전문성이 있느냐다. 2010년 산업은행이 주당 1만5000원대에 사들인 대우건설의 주가는 현재 5700원대에 머물고 있다. 유력 후보가 회사를 키워 시장의 품에 돌려줄 능력이 있을까. 대주주 산업은행과 사추위가 묻고 답해야 할 질문이다. 그럴 자신이 없는 후보라면 알아서 사퇴하는 것이 옳다. 정치적 배경은 시장에선 통하지 않는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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