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상훈]홍기택과 장진구

이상훈 경제부 차장

입력 2016-07-15 03:00 수정 2016-07-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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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경제부 차장
“이놈이 하다하다 지 석사논문을 베껴?”

2000년에 시청률 30%를 넘기며 공전의 히트를 친 드라마 ‘아줌마’의 마지막 회. 아내에게 이혼을 당한 주인공 장진구는 교수 재임용에 탈락할 위기에 처하자 부족한 연구 실적 건수를 채우려 자신의 석사논문을 표절한다. 아버지에게 혼쭐이 난 장진구는 끝내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해 대학에서 쫓겨난다.

조만간 국장급으로 강등될 홍기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를 취재하면서 16년 전 흘러간 드라마가 문득 떠올랐다. 부총재 휴직을 둘러싼 일련의 해프닝 탓만이 아니다. 28년간 대학교수로 강단에 섰던 그의 학문적 성과의 민낯을 보게 돼서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에서 홍 부총재의 논문을 찾으면 총 6편이 나온다. 여기에는 학부를 졸업한 1975년 논문과 박사학위를 받은 1984년의 논문, 지금은 사라진 학술지에 실린 5쪽짜리 권두(卷頭) 칼럼 등이 포함돼 있다. 2003년 이후 집필한 논문은 아예 없다. 제1저자로는 학술 서적은 고사하고 강의 교재로 쓸 법한 개론서도 눈에 띄질 않는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서 2011년 개최한 ‘재정패널 학술대회’ 참가자 명단에 홍 부총재가 있다. 하지만 논문 발표자가 아닌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였다. 기자가 만난 대학교수들은 대부분 논문 실적을 채우느라 방학에도 연구실을 떠나지 못한다고 푸념했다. 그런데 홍 부총재는 10년에 한 편꼴로 논문을 쓰며 대학 강단을 지켰다. 대학교수 경력이 홍 부총재의 절반(14년)에 불과한 안종범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은 45편의 논문을 썼다.

그 대신 홍 부총재의 이름은 언론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포털 사이트 기사 검색이 가능한 1990년 1월부터 대통령직인수위원이 된 2012년 12월까지 그의 이름이 등장하는 기사는 모두 382건이나 된다. 하지만 기명 칼럼, 전문가 코멘트, 금융사 사외이사 임명 소식 등이 대부분이다. 한국 경제에 수많은 조언을 던졌지만 정작 학자로서 내세울 만한 학문적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경기고-한국은행 조사부-미국 스탠퍼드대 박사’라는 화려한 이력에 감춰진 이면이다.

학계를 떠난 뒤 홍 부총재는 화려한 출세길을 달렸다. 실력보다는 정권 창출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은 결과라는 해석이 많다. 실제로 2013년 4월, 금융위원회는 홍 부총재를 산은금융지주 회장으로 제청하면서 “국제금융과 거시경제 분야의 전문가”라고 보도자료를 냈다. 하지만 정책금융기관 수장으로 필요한 덕목인 실물경제에 대한 미시적인 분석력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었다. 그가 국제금융 전문 지식이 필요한 AIIB 부총재직에 올랐을 때 기획재정부는 “AIIB 설립 과정에서 보인 한국 정부의 주도적 역할과 국제사회에서 강화된 위상이 감안된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정작 홍 부총재에 대한 소개는 뺐다.

홍 부총재의 AIIB 휴직 소식이 알려진 지 보름이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그의 행방은 ‘공식적으로’ 오리무중이다. 왜 이 같은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해명도 없다. 3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소속 대학에서 국제무역론을 강의하던 홍 부총재는 산은 회장에 임명되자마자 수업을 받던 85명의 수강생에게 작별 인사도 제대로 남기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학교를 떠났다. 부랴부랴 대체 강사를 수배하고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뒤치다꺼리는 대학이 떠안아야 했다. 홍 부총재의 뜬금없는 휴직에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까지 겹쳐 한국인이 다시 AIIB 부총재 수준의 요직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AIIB에 한국은 무려 4조3000억 원을 투자했다. 뒷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한 낙하산 인사로 인해 치러야 할 비용치고는 너무 비싸다.

이상훈 경제부 차장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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