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대상, 검경 마음먹기 달려… 민간인 사찰 날개다는 셈

김도형 기자 , 서형석 기자

입력 2016-07-06 03:00 수정 2016-07-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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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法 필요하지만 이대론 안된다]특정인 먼지털기 수사 우려

잔칫집 하객의 축의금 봉투와 상가 조문객 조의금 봉투를 경찰이 열어 보거나 그 장부를 뒤진다. 서울 강남지역 고급 일식집 등에는 상시적으로 경찰이 지키고 서서 드나드는 사람과 결제 상황을 살핀다. 수사기관은 특정인을 표적으로 삼아 그의 일상을 일일이 체크하는 먼지 털기식 조사를 벌인다. “거주자가 과도한 명절 선물을 받은 것 같다”라며 경찰이 택배를 받은 아파트 경비실을 조사한다. 채용이나 인사 시즌마다 공무원 등이 식대 3만 원이 넘는 접대를 받았다는 투서가 수사기관에 쏟아져 들어오고, 이를 바탕으로 사찰 수준의 광범위한 조사가 진행된다.

수사기관과 전문가들이 김영란법 시행 이후 현실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상황들이다. 축의금과 식사 대접 같은 일상생활까지 법으로 규제하려는 가운데 이처럼 수사기관이 손쉽게 민간인을 광범위하게 사찰하는 제도적 장치로 김영란법이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며 만든 법이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권력에 밉보인 언론인을 합법적으로 뒷조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 “생활 속 범죄 수사와 사찰 구분 힘들어”

법적 논란이 워낙 큰 데다 아직 시행되기 전이라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도 김영란법 때문에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드러내놓고 말을 못 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5일 서울 일선 경찰서의 팀장급 관계자는 “실제로 법 내용을 들여다보면 적용할 수 있는 범위가 워낙 넓다”며 “적용하기에 따라 수사기관에는 ‘요술방망이’가 될 수 있다”고 조심스레 얘기했다.

우선 앞에서 열거한 사례처럼 부조금과 식사 대접 등을 경찰이 현장에서 직접 조사하는 상황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공직자의 결혼식을 찾은 하객이 과도한 금액의 축의금을 내는 것으로 명백하게 의심된다면 현장에서 봉투를 긴급 압수한 뒤 해당 공직자와의 관계 등을 조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리규정 수준으로 규정하던 일들이 엄연히 법이 되었기 때문에 이런 행동은 수사기관이 해야만 하는 정당한 사법 절차일 수 있다는 얘기다.

결혼식장뿐 아니라 곳곳의 식당과 술집, 골프장 등 비용을 지불하면서 서비스를 누리는 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감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빚어지면 그 다음에는 필연적으로 ‘민간인 사찰’이 합법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김영란법 위반을 감시하기 위해 누군가를 관찰하고 추적하는 행위를 사찰과 구분하는 것이 사실상 쉽지 않고 수사기관이 악용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김영란법이 악용되기 시작하면 야당 정치인,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사와 언론인 등은 누구를 만나 얼마짜리 식사를 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감시받는 상황도 피할 수 없다. 기존에는 ‘민간인 사찰’이라고 이름 붙어 정부가 드러내놓고 할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이제는 정당한 법 집행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김주영 명지대 법학과 교수는 “작은 잘못을 가지고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 이런 문제의 뿌리가 있다”며 “뚜렷한 법적 근거 없이 유력 인물을 사찰해 온 것이 큰 비난을 받았는데, 김영란법이 아예 그런 사찰을 합법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사기관에서도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을 추적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법이 시행되면 특정인에 대한 정보 수집 등은 훨씬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밥 먹고, 선물 주고, 골프 치는 것 등이 모두 수사 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사생활을 적극적으로 들여다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얘기다.


○ 별건 수사, 표적 수사 악용 우려도

현장에서 김영란법이 수사기관의 요술방망이가 될 수 있다고 얘기하는 이면에는 다른 문제도 자리 잡고 있다. 수사기관의 권한이 대폭 확대되면 자의적인 법 집행 문제와 더불어 이른바 ‘별건 수사’나 ‘표적 수사’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범죄 행위를 입증하기 쉬운 김영란법 위반으로 수사의 첫 단추를 끼우되 실제로는 다른 사안으로 수사를 이어 가는 이른바 별건 수사가 진행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뇌물수수 등 범죄 혐의가 있는 공무원을 경찰이나 검찰이 수사할 때 우선 김영란법에 저촉되는 가벼운 접대 등을 찾아내 수사를 시작한 뒤 본래의 의혹을 찾아내는 식이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상황에서는 걸리기 쉬운 김영란법을 먼저 적용하고 추가로 수사하는 이른바 별건 수사에 악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특정 인사를 지속적으로 추적 조사하는 것과 더불어 표적 수사에 악용될 가능성 역시 충분하다. 범죄 성립의 기준이 상당히 낮아 여러 건의 범죄 혐의도 비교적 쉽게 입증할 수 있다는 김영란법의 특징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은 “표적 사찰이나 수사 문제 때문에 많은 사람이 행동과 자유에 제약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며 “밥 한 끼 먹은 것도 부적절할 수 있다면 조직 안에서도 동료가 동료를 감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수사기관의 자의적 법 집행 논란도 제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와 처벌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금품수수 금지의 예외 사유로 제시된 △원활한 직무 수행 △사교 △의례 등과 관련해 의견이 엇갈릴 수밖에 없고 법원의 판례가 쌓이기 전에는 법 자체가 완결성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각종 문제점에 수사기관의 실적주의가 결합될 경우 법 집행의 왜곡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같은 부패 범죄라는 범주 안에서도 거액의 뇌물수수나 정치자금 제공 등 복잡하고 규모가 큰 비리 사건보다는 단속과 적발이 쉬운 김영란법 위반 사건에 수사력이 집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서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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