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폰 근절책 비웃는 “10만원에 OK”

정동연 기자

입력 2016-06-27 03:00 수정 2016-11-2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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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4월 내놓은 부정가입방지책… 신분증 위변조 여부만 전산 확인
다른 사람 것 도용땐 속수무책… 보이스피싱 등 2차범죄 양산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홍만표 변호사(57·구속 기소)의 고교 후배인 법조 브로커 이민희 씨(56·수감 중)는 올 1월부터 4개월 동안 검찰의 수배를 받고 도주할 때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이른바 ‘대포폰(차명 휴대전화)’을 사용한 것으로 최근 드러났다.

지난해 4월 미래창조과학부와 경찰청이 ‘범죄의 온상’인 대포폰 근절을 위해 관련 제도를 마련했지만 이를 비웃듯 대포폰을 이용한 범죄는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일부에선 대포폰 범죄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대포폰은 인터넷 광고 글 등을 통해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인터넷에는 간단한 검색어만 입력하면 대포폰을 판다고 광고하는 글이 넘쳐나고 있다. 판매업자들은 ‘대포폰’이라는 단어 대신 ‘신불자(신용불량자) 선불폰’, ‘명의 필요 없는 휴대폰’이라는 말로 광고를 하고 있었다. 실제 판매업자들에게 연락해 대포폰 개통이 가능한지 묻자 “입금만 되면 신원확인 절차 없이 휴대전화를 보내주겠다”고 대답했다. 선불 결제 방식의 대포폰은 10만∼12만 원대에 거래되고 있었다.

대포폰 근절을 위해 등장한 ‘부정가입방지시스템’은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이 시스템은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이 위·변조됐는지를 전산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미래부 산하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관계자는 “휴대전화를 개통할 때 신원확인 절차를 강화하면서 명의 도용 비율이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에 따르면 이 시스템은 신분증 위·변조 여부만을 걸러낼 수 있을 뿐 위·변조되지 않은 타인의 신분증을 도용할 경우에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문제는 대포폰이 대부분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도용하거나 불법 거래를 통해 습득한 뒤 이를 이용해 휴대전화를 개설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 노원경찰서는 대출을 빙자해 개인정보를 건네 달라고 한 뒤 이 정보로 대포폰을 개통하는 방식으로 150여 대의 대포폰을 개설한 보이스피싱 일당을 적발하기도 했다. 이들은 신용등급을 확인한다고 속이고 자동응답시스템(ARS)을 통해 주민번호와 신용카드 정보 등을 입력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빼내 139명의 명의로 153대의 대포폰을 만들었다.

신분증 도용을 막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휴대전화 판매점에서 가입자와 신분증을 대조해 일일이 확인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휴대전화 판매점에서는 가입자가 가져온 신분증과 실제 가입자를 대조하기 위한 시스템이 없을뿐더러 가입자 신분 확인을 소홀히 해도 뚜렷한 처벌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다. 서울 마포구에서 휴대전화 판매점을 운영하는 서모 씨(42)는 “가입자의 얼굴과 신분증의 사진을 대조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손님이 몰릴 경우 일일이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경훈 정보통신소비자보호연대 대표는 “대포폰으로 인한 명의 도용 등 1차 피해뿐 아니라 이를 이용한 보이스피싱 등 2차 범죄가 양산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휴대전화 최초 개통 시 가입자 얼굴을 촬영해 이를 신분증상 사진과 대조하는 방법 등 범죄 수법에 맞춘 현실적인 부정가입방지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동연 기자 ca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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