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손상은 황사-꽃가루 탓”… 옥시, 황당 의견서 檢제출

권오혁 기자 , 이정은 기자 , 조동주 기자

입력 2016-04-25 03:00 수정 2016-04-25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가습기 살균제로 단정 못해” 주장
전문가 “황사, 노인에 주로 악영향… 증상도 달라… 납득할 수 없어”
피해자들 “청문회-특별법 제정을”… 롯데측, 합의금 조정결정 이의신청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최대 가해 기업으로 지목된 옥시레킷벤키저가 피해자들의 집단 폐 손상 원인이 ‘봄철 황사나 꽃가루에 의한 것’이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지난해 말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24일 밝혀졌다. 지난해 말까지 피해 원인을 두고 황사 등을 거론하며 책임을 회피했던 옥시는 올해 1월부터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집중 수사에 나서자 뒤늦게 사과했지만 가습기 살균제가 폐 손상의 원인이라는 점은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에 따르면 옥시가 지난해 말 검찰에 제출한 77쪽짜리 의견서에는 피해자들의 집단 폐 손상이 봄철 황사나 꽃가루 때문일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 담겨 있다. 국내 대형 로펌에 자문해 제출한 이 의견서는 가습기 살균제와 피해자들의 집단 폐 손상이 관련 있다는 2012년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를 반박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옥시는 폐 손상이 특정 화학물질에 의해 특이하게 발생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비특이성 질환’이라며 봄철 황사나 꽃가루, 가습기 자체의 세균, 담배 등도 폐 손상 유발 인자라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의 폐 손상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황사 같은 다른 요인에 의해서도 발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화학물질인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발생한 폐 손상과 황사로 인한 증상이 확연히 다르다고 반박했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황사가 문제라면 장기적으로 모래가 폐에 쌓일 가능성이 높은 노인층에 주로 악영향을 미쳐야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폐 섬유화 현상은 어린이에게 집중적으로 나타났다”며 “광물질인 모래가 폐 섬유화를 일으켰다면 병세가 천천히 진행돼야 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갑작스러운 염증과 흉터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은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대에서 규탄대회와 임시총회를 열고 20대 국회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청문회를 열고 특별법을 제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강찬호 공동대표는 “19대 국회에서 특별법 제정을 두고 환경노동위원회 입법 공청회까지 열렸지만 당시 정부 여당의 반대로 더 진행되지 못했다”며 “지금까지 제대로 된 법안이 없어 피해 회복이 탄력을 받지 못한 만큼 새로운 여소야대 국회에서 피해자 대책과 진상 조사, 재발 방지 등을 모두 담는 특별법을 꼭 통과시켜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피해자 모임을 법인화해 옥시, 롯데, 홈플러스 등 가해 기업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변호사 25명으로 구성된 피해자들의 소송대리인단은 “정부 조사에서 피해판정 1·2등급은 5000만 원, 3·4등급은 3000만 원으로 청구금액을 일괄 적용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가습기 살균제 판매 업체인 롯데는 피해자 5명과의 손해배상 소송 과정에서 법원의 강제조정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0부(부장판사 이은희)가 1일 직권으로 합의금을 정해 피해자 5명과 롯데의 화해 조건을 제시했지만 롯데 측이 22일 이를 거절한 것이다. 반면 홈플러스는 최근 피해자들과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의 강제조정 결정을 받아들여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우리가 (18일에) 공식 사과하면서 약속한 피해자 보상 기준을 이 사건 합의 기간 안에 수립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워 이의 신청을 한 것”이라며 “보상 전담팀을 구성한 만큼 검찰 수사가 끝나면 피해자에게 일괄적으로 보상 협의와 지급을 개시하겠다”고 해명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이정은 기자·권오혁 기자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