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性소수자 보호”… 州정부 압박

부형권특파원

입력 2016-04-04 03:00 수정 2016-04-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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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사회공헌” , “도넘은 정치행위”… 美 진보-보수 논쟁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같은 성적소수자(LGBT)의 권리를 방어하는 최대 무기는 대기업들의 보이콧 위협이다.’

미국 NBC방송은 최근 성소수자를 차별할 가능성이 있는 법안을 발의하거나 통과시킨 주 정부에 대해 기업 활동 중단이나 투자 철회를 내세워 압력을 가하는 대기업의 행태를 이렇게 분석했다. 인권단체 등 진보 진영은 “기업의 양심과 사회적 책임에 입각한 행동”이라고 평가하지만 종교단체 등 보수 진영에선 “(유권자로부터) 선출되지 않은 기업의 도를 넘는 정치 행위”라고 비판한다. 경제전문지 포천은 2일 “대기업들의 이런 행동주의는 어떤 차별에도 반대한다는 상징성과 모든 소비자를 포용한다는 (마케팅)전략이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의도가 무엇이든 ‘경제 권력이 정치와 행정도 좌지우지한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성소수자 차별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법안이 주 의회에서 가결되면 대기업들이 그 주에 대한 보이콧 위협을 하고, 주정부는 이에 굴복해 주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법안 수정을 요구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조지아 주 의회는 성소수자에 대한 서비스를 종교적 신념에 따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 법안을 가결했지만 주지사가 기업들의 보이콧 위협에 굴복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요즘 대기업들은 트랜스젠더의 출생 당시 성(性)에 따라 화장실을 이용하도록 규정한 법을 통과시킨 노스캐롤라이나에 힘을 집중하고 있다. 입법 취지는 ‘트랜스젠더, 특히 여자로 성전환을 한 남자가 여자 화장실을 이용할 경우 다른 여자들에게 불쾌감이나 위협을 줄 수 있다’는 것이지만 대기업들은 “이 역시 ‘차별면허증’ 같은 법”이라고 압박한다.

지난해에는 인디애나와 아칸소 주도 비슷한 법안을 가결시켰다가 대기업들의 압력에 주지사들이 무릎을 꿇었다. 2014년 애리조나 주의 공화당 소속 강경 보수 잰 브루어 주지사조차도 비슷한 법안을 추진하다가 같은 굴욕을 당해 “대통령과도 맞짱 뜨는 여자 주지사가 대기업의 경제적 압박은 견뎌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데버러 스몰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 교수는 “대기업들이 사업적 성공을 위해서라도 변화하는 문화적 가치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소비자들에게 좋은 기업으로 인식되고 우수 인재 영입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LGBT의 권리를 위해 그렇게 힘껏 싸우는 대기업들이 백인 경관의 총에 맞아 숨진 흑인들의 생명에 대해선 침묵한다. 왜 ‘흑인들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며 보이콧 압박을 가하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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