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의 성채도시 :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코토르

입력 2016-03-10 16:46 수정 2017-01-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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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코발트블루 아드리아해와 대비된 강렬한 빨간 지붕 … 아직도 미지의 보석같은 곳


# 두브로브니크 : 푸른 아드리아해를 따라 떠 있는 성채도시
유럽의 도시 대부분은 여행자를 부르는 ‘특별한 뭔가’를 갖고 있다. 이탈리아의 콜로세움, 피사의 사탑, 파리의 에펠탑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발칸반도에 위치한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에는 이같은 요소가 없다. 그럼에도 이곳은 2000년대에 들어 유럽인들이 동경하는 최고의 휴양지로 자리잡았다. 유럽부호의 단순 은둔처였던 도시가 어떻게 입소문을 타고 현재는 아시아의 우리까지 부르게 됐을까.

두브로브니크 도심은 옛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구시가지와 현지인들이 거주하는 신시가지로 구분된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구시가지를 둘러본다. 구시가지는 푸른 아드리아해를 따라 둥둥 떠 있는 성채도시 같다. 빨간 지붕을 가진 아이보리색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성벽이 그 주변을 감싸고 있다. 성벽 너머에는 끝이 어딘지 가늠되지 않는 바다가 있고, 반대편으로 푸른 녹음을 가진 산 중턱 곳곳에 마을이 모여 있다. 이같은 모습에 영국의 유명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두브로브니크를 보지 않고 천국을 논하지 말라’고 말했다.

빨간 지붕을 가진 모습은 유럽의 다른 도시와 흡사하다. 그것에 질릴 때도 됐지만 이곳에 도착하자 입에서 무심코 작은 탄성이 새나온다. 이곳의 붉음은 강렬하다. 아드리아해의 파란 물결에 선명하게 대비되며 강렬함이 배가 된다.

구시가지는 때와 장소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10월까지 해안에서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이곳의 여름은 유난히 덥다. 내가 방문한 7월의 열기는 인도 못잖다. 여행의 정리와 새로운 시작의 준비를 위한 적절한 장소는 아니다. 선택한 대안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는다.

아침 6시가 되자 알람이 울린다. 해가 비추는 반경이 넓어지기 전에 서둘러 마쳐야 한다는 조급함에 숙소를 나선다. 언제부터 사람이 북적대는 것을 싫어하게 됐다. 구시가지까지 걸어가는 동안 거리는 한산하다. 밤새 클럽에서 회포를 풀고 가는 젊은이들과 아침출근을 서두르는 직장인 몇몇이 보인다. 건물의 모습은 서울과 다르지만 풍기는 사람냄새는 별반 차이 없다.

구시가지의 입구이자 서쪽의 현관문인 ‘필레 문(Pile)’을 들어서자 둥그런 ‘오노프리오스 분수(Onofrijera Cesma)’가 아침 인사를 건넨다. 지난밤 많은 이들이 앉아 아름다운 오늘의 마지막 추억을 남겼던 자리는 텅 비어 허전하다. 분수 뒤로 길게 뻗은 구시가지의 메인 길 ‘플라차 대로(Placa Stradun)’가 보인다. 대리석 바닥이 관광객 등살에 유난히 닳아 있다. 종탑 주위의 새들이 빙빙 돌며 지저귄다. 선명한 새소리를 들으며 인적 없는 성곽 내부를 걸었다.

어느덧 성곽 후문에 있는 항구에 도착했다. 호화 보트들은 소리 없이 화려할 뿐이고, 투어 상품 가판대는 지난밤의 야경을 잃어버렸다. 홀로 성곽의 내부를 청소하는 차량만이 바닥에 물을 연신 뿜어낸다. 다시금 허무하고 조용한 성곽을 걸으며 그들처럼 남은 인생의 시작일 오늘 하루를 준비한다.

이곳에 오면 누구나 다 성곽에 오른다. 현지에서는 이를 투어라 부르지만 입장료(2015.12 기준 100hrk, 한화 약 1만7000원)만 지불하고 개별적으로 걷기에 투어라 하기에는 다소 모호하다. 성곽 입구에서 표를 구매하고 계단을 올랐다. 사람들을 따라 반시계방향으로 약 2㎞ 거리를 2시간 정도 걷는다. 붉은 지붕들 사이로 오밀조밀 모여 있는 관광객이 마치 작은 난쟁이처럼 보인다. 성곽을 따라 걷다보면 짙은 코발트블루의 아드리안해에서 보트를 타고 있는 부호들과 그 옆에서 카누를 타는 관광객이 보인다. 시야를 아래로 향하니 성곽 너머 절벽에 파라솔을 펴고 다이빙을 즐기고 있는 관광객들도 있다. 내 허전함을 모르는 듯 그들 모두 한껏 여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성곽을 따라 걷다보면 내전의 아픔을 절실히 보여주는 재건되지 못한 건물들도 꽤나 있다.

다음날 버릇처럼 높은 곳을 찾는다. 성곽 뒤편 400m 높이에 위치한 언덕 전망대 ‘스르지산’으로 향했다. 나의 일상이 돼버린 습관처럼 일몰시간에 맞춰 숙소를 나왔다.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도착했다. 가이드로 쳐 둔 공간이 답답했는지 왼편의 십자가탑이 있는 곳으로 간다. 보호시설이 없어 다소 아찔하지만 모든 게 한눈에 들어온다. 언덕 바위에 걸터앉은 관광객들 틈에 자리를 잡는다. 성곽 투어와 나만의 새벽 투어를 통해 봤던 이곳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성벽이 구도심을 감싸 안은 모습은 왜 이곳을 필사적으로 지키고 복원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해가 서쪽 끝으로 떨어지자 묽어지는 아드리아의 해는 더욱 매혹적이다.

두브로브니크는 그러나 한여름의 살인 더위, 수많은 관광객, 높은 물가, 대표할만한 특징적인 음식이 없다는 단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바다, 과거, 현재를 모두 갖춘 이곳의 매력은 충분이 투자할 만하다. 나의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밤에도 여전히 북적거리는 구시가지 골목길을 어슬렁거린다.


[TIP1] 숙소
두브로브니크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이기에 여행자들이 몰리는 구시가지 주변에 숙소가 몰려있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리면 ‘SOBE’ 팻말을 든 호객꾼들이 많다. 그들은 정부에서 인증받아 개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으로 우리네 옛 강원도의 모습과 유사하다. 성수기에는 상당한 물가를 자랑하는 만큼 적당한 가격과 위치라면 흥정해 볼 만하다.

저렴한 숙소를 원한다면 구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유스호스텔’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내 경우 한국에서 사전 등록한 유스호스텔 회원증을 잘 활용했다. 단 구시가지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는 게 불편하다. 3인 이상 이곳을 여행할 계획이라면 ‘에어비엔비’를 통한 아파트 대여도 추천한다.


[TIP 2] 크로아티아 일정
아름다운 크로아티아의 자연 경관과 중세 도시의 모습을 느끼기에는 렌트카 여행이 좋다. 하지만 긴 지형의 특성상 도시 간 이동거리가 상당하다. 두브로브니크에서 플리트비체까지 10시간이 걸린다. 만약 휴가로 1주일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다음 일정을 추천한다.

아드리안해에 떠 있는 중세도시 두브로브니크 3일, 요정이 살고 있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2일, 크로아티아의 수도이자 현재의 모습 자그레브 2일이 적당하다.

도시 간 이동은 저가항공을 이용하는 게 좋다. 크로아티아는 최근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관광객도 생각보다 많다. 2014년 모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지면서 매년 이곳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시간이 흐르기 전, 서둘러 방문해볼 여행지임은 분명하다.


#. 코토르 :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사진

발칸반도의 ‘몬테네그로’라는 조금은 생소한 나라에는 두브로브니크와 닮은 도시가 있다. ‘코토르(Kotor)’라는 이름을 가진 그것은 피오르 형태의 만에 펼쳐져 있는 휴양도시다. 구도심은 4.5㎞에 달하는 성벽으로 이뤄져 있고, 내부의 건축물 색상과 바닥의 문양, 상점의 테라스 형태까지 중세의 것을 재현한 듯 대부분 비슷하다.

이처럼 도시의 구성요소 자체는 흡사하다. 하지만 야자수가 우거진 거리의 풍경과 디나르알프스산맥의 잿빛 산이 어우러진 모습은 두브로브니크보다는 조금 광활하다. 특히 이곳은 예로부터 해안선의 굴곡이 심해 해적들의 은신처로 이용됐다. 해적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도시의 내부 구조는 복잡한 미로가 되었다. 물론 모로코의 페즈에 비하면 그리 혼돈의 세계는 아니기에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성곽 안으로 들어서자 메인 광장에는 깃발을 든 기수를 따르는 단체 여행객들이 점령하고 있다. 이곳은 개별여행으로는 보통 2일 정도의 여정으로 오거나, 두브로브니크에서 당일치기 여행 상품으로 오는 이들이 많다. 미로 같은 곳에서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가이드의 말을 흘겨듣고 성곽탐험에 나섰다. 역시 좁은 건물들 사이를 탐방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침 행사 중인지 성곽 내부 곳곳에는 아름다운 조형물들이 한껏 치장돼 있다. 하지만 해가 중천에 뜨면 좁은 골목을 채우는 관광객 열기에 탐방도 힘들다. 식사를 위해 한 레스토랑의 테라스에 자리를 잡는다. 찌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뿜어나오는 수증기가 논에 설치된 스프링클러 같다. 시가지는 두 세 시간이면 충분할 만큼 크지 않다. 물론 진정한 코토르의 진수는 다른 곳에 있다.

마을 뒤편의 허름한 길을 걷다보면 성곽을 오르는 산길을 만난다. 지그재그 형태로 놓인 채 다듬어지지 않은 성곽의 돌계단을 오른다. 시야가 높아질수록 코토르 내항 마을의 풍광은 환상적인 위용을 드러낸다. 깊숙이 침범한 코토르만을 둘러싼 산과 마을이 자연 깊은 곳에 숨어 살다가 서서히 그 정체를 밝힌다. 꽤나 경사가 있는 돌계단을 한참이나 올랐다. 한 시간 정도 지나 제법 땀이 맺기 시작했지만 분명한 목표의식은 나의 발을 몰아붙인다. 성곽의 꼭대기에 오르자 강한 바람이 나를 맞이한다. 눈앞에 펼쳐진 자연이 선사한 놀라운 경관에 피곤함은 금세 사라진다. 엽서의 사진 같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몬테네그로의 국기가 전부지만 그 광활함에 힘껏 들이마신 공기의 양은 나의 감탄을 반영한다.

코토르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미지의 보석 같은 곳이다. 머지않아 가장 ‘핫한’ 여행지로 급부상할 것이다. 자연과 역사의 발자취를 고이 간직한 발칸반도의 여정을 마치고 마지막 행선지인 이탈리아로 향한다.

글 = 장기백 여행칼럼니스트 eyebus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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