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에코비’가 마이애미 해변을 질주하려면

박용기자

입력 2016-02-29 03:00 수정 2016-02-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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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경제부 차장
세계 부자들의 휴양지인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해변이 한국과 중국의 첨단 자기부상열차가 맞붙는 격전장이 되고 있다. 자기부상열차는 바퀴 없이 선로 위를 떠서 달려 마찰에 의한 소음과 진동, 분진이 거의 없다. 건설비도 지하철의 70%밖에 들지 않아 ‘꿈의 열차’로 불린다. 이 때문에 마이애미 당국은 공항에서 마이애미 해변까지 30km에 이르는 구간에 자기부상열차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달 3일 일본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중·저속형(도시형) 자기부상열차 ‘에코비’를 인천공항 구간 선로에 올린 한국과 2000년대 초 고속형 자기부상열차를 상용화한 중국이 ‘마이애미 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다. 수주 결과에 따라 막 첫 발을 뗀 양국 자기부상열차의 미래가 크게 엇갈릴 것이다.

세계무대 도전을 앞둔 에코비의 첫 출발은 매끄럽지 않았다. 운행 첫날 최정호 국토교통부 2차관과 기자들을 태우고 달리다가 급정거해 체면을 구기더니, 23일엔 선로 화재로 승객 20여 명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다행히 큰 사고가 아니었고, 열차 운행도 곧 재개됐다.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개척하는 건 이처럼 어렵고 힘든 일이다.

다친 승객이 없다고 해서 어물쩍 넘어갔다간 더 큰 화가 닥칠 수 있다. 1931년 허버트 하인리히는 중상자 1명이 발생한 사고 이전에 같은 원인으로 29명의 경상자, 300명의 잠재적 부상자들이 있다는 걸 밝혀냈다. 당국은 급정거와 선로 화재에 놀란 승객들이 하인리히의 ‘잠재적 부상자’일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고 에코비의 기술과 운영 관리를 점검하고 개선해야 한다. 경쟁국인 일본 중국 등이 수주 경쟁에서 이를 악용하지 않도록 에코비의 명성 관리도 철저히 해야 한다. 작은 사고라도 신속하게 원인을 조사하고 결과와 개선책을 투명하게 밝혀 시장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이번 일로 기술 개발이 후퇴하거나 개발진의 도전 정신이 위축돼서도 안 된다. 한국은 1989년 독일 일본에 이어 자기부상열차 기술을 확보했다. 당시 열차는 1.6m 선로 위를 1cm 떠서 약 20kg의 짐을 싣고 초속 30cm로 달리는 초보적인 수준이었지만, 현대정공(현대로템의 전신) 연구팀 5명이 밤낮없이 자료를 뒤지고 연구에 매달려 1년 만에 얻은 결실이었다. 이 기술은 1993년 대전국제박람회(엑스포)에서도 선보였다. 스포트라이트는 거기까지였다. 바퀴식 고속철도 기술에 밀려 사장될 위기에 놓였다. 실험실과 시장의 단절을 뜻하는 ‘데스밸리’ 신드롬에 시달린 것이다.

1998년 자기부상열차 시제품을 개발한 과학기술부가 당시 건설 중인 인천공항에 시범 노선을 만들려고 했지만 건설교통부가 “신뢰성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거부했다. 경부고속철도 사업에서도 배제됐다. 정부의 투자가 재개돼 2006년 실용화 모델(시속 110km급)이 개발됐고, 2012년 인천공항 시범 노선에서 시운전도 시작됐다. 하지만 시운전 과정에서 606건의 문제점이 발견돼 두 번이나 개통이 연기되는 시련을 겪었다.

한국산 자기부상열차 기술이 데스밸리에 빠져 고전하는 사이 후발 주자인 중국은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중국은 1000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자해 2002년 12월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고속 자기부상열차를 상하이에서 선로에 올렸다. 당시 개통식에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와 기술을 수출한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참석했다. 에코비 개통식에 국토부 차관이 참석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 철도시장은 세계 시장의 1% 미만이다. 에코비가 세계시장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4150억 원에 가까운 혈세와 27년간 흘린 개발진의 땀과 눈물은 허공으로 사라질 것이다. 세계 경기 침체와 중국 등 신흥국의 부상으로 세계 철도시장에서 게임의 법칙도 크게 바뀌고 있다. 기업 혼자 힘으로는 각국의 높은 진입 장벽을 넘기도 어렵고 다른 국가 기업과의 경쟁도 버겁다. 고속철도 기술 선진국인 일본이 후발 주자인 중국에 밀린 건 기술력보다 국가적인 투자와 지원에서 뒤졌기 때문이다. 품질 인증, 사업 타당성 조사, 노선 신설, 차량 구매, 세계 시장 개척 등의 국가적 노력이 없다면 국산 철도 기술의 상용화나 세계시장 수출은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 에코비가 마이애미 해변을 달리려면 당장 국가적 역량을 결집해도 모자란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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