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열심히 살지만 팍팍한 삶… 그들에게 주는 진심의 위로

최혜령기자

입력 2016-01-18 03:00 수정 2016-01-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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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재력을 깨우고 동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우직하고 꾸준한 노력은 매우 값진 것입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 이미 빛나는 ‘달성(達成)’이라고 불러야 옳습니다.” ―더불어 숲(신영복·돌베개·2015년) 》

열심히 하겠다는 말보다 잘하겠다고 말하라. 신입사원의 의욕 넘치는 눈을 보고 상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서도 일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고민 끝에 신입사원은 열심히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요령 없고 미련한 이에게는 ‘이것도 못하냐’는 힐난이 쏟아진다. 신영복 교수의 ‘더불어 숲’은 이들의 팍팍한 삶에 진심이 담긴 위로가 됐다.

더불어 숲은 1997년 신 교수가 세계 22개국을 돌면서 느낀 점을 모아 이듬해 펴낸 책이다.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다양한 문화 사이의 관용을, 독일 아우슈비츠에서는 과거 청산의 의미를 되새긴다. 독자를 부르는 ‘당신’이라는 호칭과, ‘…했다’가 아니라 ‘…습니다’로 끝나는 문체 덕분에 책에 가득한 가르침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신 교수가 15일 세상을 떠났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 20일을 복역하고 1988년 출소한 지 약 28년 만이다. 신 교수는 감옥에서도 공부와 성찰을 계속했다. 그 결과물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으로 나오기도 했다. 고인의 정치색을 두고 온라인상에서 편 가르기를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고인은 정치색과 무관하게 열심히 사는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대를 막론하고 큰 버팀목이 됐다.

그는 노력의 가치를 알지만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냉정함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꿈은 우리들로 하여금 곤고(困苦)함을 견디게 하는 희망의 동의어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꿈은 발밑의 땅과 자기 자신의 현실에 눈멀게 합니다. 오늘에 쏟아야 할 노력을 모욕합니다. 나는 이것이 가장 경계해야 할 위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채찍과 따스함을 동시에 주는 글을 여러 편 남겨줬다는 게 그를 잃은 오늘, 하나 남은 위로다.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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