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의 몰락 이겨낸 핀란드식 구조개혁 배워야”

김철중기자

입력 2016-01-05 03:00 수정 2016-01-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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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새 성장판 열어라]<4>골든타임 놓치지 않으려면
[2016 연중기획]


정부는 지난해 10월 말 대규모 부실이 드러난 대우조선해양에 총 4조2000억 원을 추가로 지원한다고 밝혔다.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 측은 “대우조선이 파산할 경우 한국 경제와 조선 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커 불가피하게 지원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 방안 발표 전 대우조선이 생산직 직원들에게 1인당 100만 원씩 격려금 잔치를 벌인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공분(公憤)을 샀다. 대우조선을 국민의 혈세를 갉아먹는 ‘부실 덩어리’로 키운 것은 강도 높은 구조개혁과 민영화에 나서지 않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 정부, ‘개혁’ 아닌 ‘몸 사리기’가 우선

대우조선은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공적자금 2조9000억 원이 투입돼 회생했다. 정부는 2000년대 중반부터 대우조선의 매각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2008년에는 한화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양측이 인수대금 조달 방안에 이견을 보이다 협상이 결렬됐다.

이에 대해 정부가 공적자금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가치 극대화에만 매달리다 적절한 매각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2013년 금융위원회가 보유하고 있던 대우조선해양 지분 5%(957만 주)를 ‘블록세일’(가격과 물량을 미리 정해 놓고 특정 주체에게 일정 지분을 묶어 일괄 매각하는 것) 방식으로 주당 3만5520원에 처분한 바 있다. 관가에서는 최근 대우조선해양 주가가 5000원대까지 떨어지자 당시 매각에 관여했던 관료들이 ‘이제 헐값 매각 얘기는 듣지 않겠다’며 오히려 안도감을 나타냈다는 말까지 나돈다.

민영화가 늦어지는 가운데 정부는 오히려 대우조선에 낙하산 인사를 포진시키는 데 급급했다. 2004년부터 최근까지 특별한 자문 실적도 없이 대우조선으로부터 평균 8800만 원의 연봉을 받은 자문역이 60명에 달한다는 사실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드러났을 정도다. 자문역 중에는 산업은행 출신이 4명이나 포함됐다.

관료들이 기업회생보다는 ‘잿밥’에 관심을 두는 사이 정부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산은,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들이 ‘만성적 한계기업’에 빌려준 신용공여액은 2011년 22조8000억 원에서 지난해 6월 말 43조7000억 원으로 약 2배로 급증했다. 만성적 한계기업이란 3년 연속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를 못 갚는 상태가 2005년 이후 최근 10년간 2차례 이상이었던 기업이다.


○ 정쟁에 가로막힌 구조개혁

지난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노동, 공공, 금융, 교육 등 4대 개혁은 정치권에 가로막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파견근로자법 개정안 등 노동개혁 5대 법안은 국회에 제출됐지만 야당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한 채 해를 넘겼다. 최근에는 여당이 노동개혁 법안을 선거구 획정안과 연계하는 카드까지 꺼내들며 셈법이 더 복잡해졌다. 이와 관련해 한 경제학자는 “과거 여야 모두 노동개혁에 대해서는 대기업과 노동조합의 눈치만 보더니 이제는 정쟁의 도구로 여기는 것 같아 정치권의 진정성마저 의심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국회를 통과한 공무원연금 개혁도 당초 국민들의 눈높이에는 못 미치는 결과가 나온 데다 금융, 교육 개혁은 제대로 시작도 못한 상황이다. 특히 총선이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부와 정치권의 ‘개혁’이 단지 구호에만 그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담당 국장은 “한국이 서로 다른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개혁에 실패하고 결국 일본을 닮아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흘러나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은 1980년대 중반부터 부동산 자산의 거품이 꺼지면서 은행 도산과 기업들의 자금난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일본 정부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 대신 지방과 농업 분야를 중심으로 하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치다 장기 불황에 접어들었다.


○ “구조개혁에 대한 의지 필요”

핀란드는 국내총생산(GDP)의 25%까지 차지하던 노키아의 몰락을 딛고 국가 차원에서 산업 구조조정을 이뤄내 성공적인 구조개혁 사례로 꼽힌다. 핀란드의 대표 기업이던 노키아는 2012년 6월 본사 직원 중 20%인 1만 명을 감원한다는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핀란드 정부와 노키아는 경쟁력이 떨어진 휴대전화 제조 분야를 과감히 포기하고 대체 분야에 눈을 돌렸다.

핀란드 정부는 핀테크와 모바일 게임 등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며 노키아의 빈자리를 채워 나갔다. 변화에 뒤처진 산업을 살리는 데 매달리기보다는 시대 변화에 맞춰 산업 구조를 바꾼 덕분에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강국으로 재도약했다는 평가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특출한 정책이 아니라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라며 “얼마 남지 않은 구조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정부와 정치권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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