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인규]시장경제를 부탁해

동아일보

입력 2015-12-15 03:00 수정 2015-12-1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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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가장 큰 적은 재벌,대기업 노조,정치인,관료
청년들을 헬조선서 구하려면 제도 개혁을 통해 시장경제 활력 되살리는 길뿐
2016년 총선, 2017 대선에서 개혁 세력을 선택한다면 희망이 있다.


김인규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
신경숙 작가를 잃어버린 지 반년째다. 그의 문단 잠적은 일본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일부를 그가 표절했다는 논란에서 비롯됐다. 표절 논란은 ‘문화권력’과 ‘시장논리’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됐다. 이 두 비판을 차례로 살펴보자.

신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는 창비에서 나왔다. 이 책이 200만 부나 팔린 덕분에 창비의 매출액은 두 배 이상 뛰었다. 그래서일까. 창비의 주인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표절이 아니라 문자적 유사성”이라며 신 작가를 두둔했다. 그러자 후배 문인들이 “‘집밥 백 선생’은 요리 만드는 기술이라도 가르쳐 주지. ‘창비 백 선생’은 한국 문단 흑역사에 한 획을 긋는구나”라는 등 ‘문화권력’에 맹공을 퍼부었다.

이런 공격은 시장논리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문학평론가인 오길영 충남대 교수는 “창비마저도 문학의 시장논리에 굴복하는구나 싶다. … 시장논리만을 중시하는 태도가 문제란 뜻이다”라고 비판했다.

시장경제제도(자본주의)는 오 교수의 비판에 억울해한다. 시장논리 덕분에 창비 백 선생이 문화권력이 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문화권력이라는 그의 기득권 행사 때문에 오히려 ‘문학시장’에서의 건전한 시장논리가 위협받고 있다.

라구람 라잔 인도 중앙은행 총재와 경제학자 루이지 징갈레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자본가로부터 자본주의 구하기(Saving Capitalism from the Capitalists)’라는 저서에서 시장경제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기득권 세력이라고 분석한다. 이 분석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창비 백 선생 정도는 명함도 못 내밀 거대 기득권 세력이 드러난다. 바로 재벌과 대기업 노조, 그리고 정치인과 관료다.

재벌은 겉으로는 시장논리와 경쟁을 칭송한다.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기득권 유지 및 강화를 위해 법과 제도를 반(反)경쟁적으로 만들려 노력한다. 또한 그들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중소 협력업체를 쥐어짠다. 예를 들면 2006년에서 2013년 사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은 10.6%에서 16.0%로 올랐지만 협력업체 이익률은 10.0%에서 4.0%로 떨어졌다.

전체 근로자의 10%에 불과한 대기업 노조 역시 기득권 유지를 위해 노동시장을 반경쟁적으로 만든다. 이들은 재벌과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통해 중소 협력업체 근로자와 비정규직의 임금을 사실상 착취한다. 1994년 대기업 근로자 임금의 77% 수준이던 중소기업 근로자 임금이 2013년엔 62%로 하락했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은 ‘귀족 노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노동개혁마저 거부한다.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에게는 시장경제제도를 잘 가꿔야 할 책무가 있다. 하지만 그들 중 우파 기득권 세력은 재벌에게, 좌파 기득권 세력은 노조에게 포획당했다. 그뿐만 아니라 관치 금융과 낙하산 인사에서 보듯 그들 스스로 시장논리를 훼손해 왔다. ‘공공개혁’을 부르짖는 현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들 기득권 세력과 더불어 빈곤층 역시 시장경제에 적대적이다. 우리의 젊은 세대가 잠재적 빈곤층으로 내몰리면서 시장경제의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대물림되면서 ‘흙수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금수저’를 이기기 어려운 세상이 돼 가고 있다. ‘헬(hell)조선’이다.

젊은 세대를 ‘헬조선’으로부터 구하는 방법은 제도 개혁으로 시장경제의 활력을 되살리는 길이 유일하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기득권 세력 때문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자유롭고 경쟁적이며 균등한 경제활동의 장이 되도록 바로잡아줘야 한다. 둘째, ‘중(中)부담, 중복지’ 정도의 사회안전망 구축을 통해 경쟁의 패자인 빈곤층에게 재기의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 셋째, 선진 자본주의로의 진화 과정에서 제3의 부문으로 떠오르는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경제’를 잘 가꿀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해야 정부로 하여금 이런 개혁에 나서도록 만들 수 있을까? 라잔 총재와 징갈레스 교수는 시장논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시장경제제도에 대한 국민의 정치적 지지가 필수적이라고 역설한다. 다행히 우리에겐 시장경제 개혁에 나설 중도 우파 개혁 세력이 존재한다. 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우리 국민이 기득권 세력 대신 개혁 세력을 선택한다면 희망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호소한다. 시장경제를 부탁해!

(사족: 본 칼럼은 약간의 ‘문자적 유사성’을 포함하고 있다.)

김인규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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