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우유만 팔던 시대는 끝났다… ‘우유 테마파크’의 꿈

이정은 기자

입력 2015-12-12 03:00 수정 2015-12-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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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 상하농원 ‘6차산업 프로젝트’

“밀가루 반죽이 다 됐나요? 그럼 이제 앞에 놓인 버터를 넣어 볼까요. 비닐 끝까지 쭉 짜서 버터를 넣고 반죽이랑 섞어 주세요. 손이 미끌미끌해져도 괜찮아요.”

고소한 버터 냄새가 진동하는 커다란 주방. ‘밀크빵 만들기 체험교실’에 참가 중인 아이들이 정신없이 밀가루 반죽을 주물러 대고 있었다. 요리대 위에서 치대면 좀 더 쫄깃하고 맛있는 빵이 된다는 진행자의 설명에 곧 탁 탁 반죽을 쳐대는 소리가 경쟁적으로 울려 퍼졌다. 밀가루 반죽을 넓게 펴서 딸기잼에 잘게 쪼갠 견과류까지 넣고 돌돌 말아 빵 모양을 만들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40분.

이곳은 전북 고창군 상하면의 ‘상하농원’ 내 밀크빵 공방. 우유 및 낙농업과 연관된 농원 내의 각종 체험교실 가운데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를 끄는 곳이다. 수제 소시지 만들기와 송아지 우유 먹이기, 텃밭 가꾸기 같은 다른 체험활동과 과일공방 견학을 끝내고 돌아올 때쯤에는 오븐 속에서 소복하게 부풀어 오른 밀크롤빵이 완성된다.

키우고 만들고 해보고

상하농원은 유제품 생산업체인 매일유업이 처음으로 시도하는 대규모 낙농체험 마을이다. 이른바 ‘6차산업’을 제대로 실현해 보자는 구상으로 이 회사가 2009년부터 시도해 온 프로젝트. 9월 부분 개장을 한 이 농원은 내년 4월 정식 개관을 앞두고 현재 시범운영에 들어간 상태다.

6차산업은 1차산업(농업 생산)과 2차산업(가공업), 3차산업(서비스 유통 관광 등)을 모두 합친 것이다. 이 3단계를 단순히 더하는 수준을 넘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으로 고부가가치를 생산하자는 게 6차산업의 핵심이다. 즉, 낙농과 축산 분야의 제품을 생산해 가공, 유통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활용한 관광산업을 키워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효과를 끌어낸다는 것이다.

상하농원은 유기농 우유를 생산하는 ‘상하목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고창 지역의 축산 농가들이 생산하는 원유를 제공받아 우유는 물론이고 버터와 치즈, 요구르트 같은 가공품을 생산해 판매한다. 상하농원의 레스토랑과 체험공방에서 쓰이는 각종 재료는 모두 여기서 가져오는 것이다.

밀크빵 공방을 나서자 넓게 펼쳐진 청보리밭이 눈에 들어왔다. “내년 봄이 되면 청보리와 함께 여기서 각종 채소를 키우게 될 겁니다. 사람들이 농업 체험을 할 수 있는 텃밭도 따로 만들 생각이고요. 농약을 쓰지 않고 키우는 토마토와 상추, 오이, 배추 같은 채소들이 농원 내 레스토랑의 재료가 되지요.” 상하농원의 박재범 대표가 청보리밭 옆의 공터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총규모가 9만 m²에 이르는 농원은 우유를 소재로 하는 밀크빵 및 젤라토(아이스크림) 공방 외에 과일로 잼이나 퓌레를 만드는 과일공방,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을 숙성시키는 발효공방, 소시지와 햄을 만드는 소시지공방, 고창 특산품인 복분자를 주제로 한 복분자공방 등을 갖추고 있다.

공방이 몰려 있는 중심부 뒤쪽의 축사에서는 젖소들에게 여물을 주고 직접 젖을 짜볼 수 있었다. 파란색 지붕에 붉은 페인트를 칠한 아담한 축사는 체험활동을 위해 따로 만들어진 곳. 우유를 받아먹는 송아지를 만지며 아이들이 까르르 웃어대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4년생인 아들과 함께 온 전주혜 씨는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코스”라며 “지역 농가에 수익이 돌아간다는 말을 듣고 농원 안에 있는 ‘마켓’에서 파는 나물이랑 곡물도 많이 샀다”고 말했다.

우리도 ‘모쿠모쿠 농장’처럼

상하농원의 벤치마킹 상대는 일본의 모쿠모쿠 농장. 미에(三重) 현 이가(伊賀) 시에 위치한 이곳은 연간 6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체험농장이다. 1987년 소시지를 팔기 위해 시작한 작은 체험교실은 이후 아기돼지 경주와 축사 견학을 비롯한 각종 볼거리를 늘리며 확장을 거듭했다.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각종 일본 과자와 기념품 등 아기자기한 제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제는 일본식 온천에 39실의 숙소까지 갖추고 매년 전국에서 50만 명의 관광객을 맞는 테마파크로 거듭났다.

농장 내 ‘파머스 마켓’에서는 지역 농민들이 키운 채소와 과일들이 거래된다. ‘모쿠모쿠’가 건강하고 신선한 식재료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면서 농장 내 식당에는 늘 손님들이 북적거린다. 경영진은 같은 이름의 레스토랑 지점들을 다른 지역으로 확장해 또 다른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모쿠모쿠 농장의 성공은 지역 사회에도 활력을 불어넣었다. 20대 청년들이 농장 직원으로 취직해 농업에 뛰어들면서 평균연령이 확 낮아졌다. 일자리가 생기고 생산품의 유통이 늘어나면서 농가의 소득도 많아졌다. 성공 노하우를 배우러 전국은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시찰단이 끊이지 않고 찾아온다.

매일유업도 2009년 모쿠모쿠 농장과 컨설팅 계약을 맺고 사업 내용과 시스템을 연구해 왔다. 장기적으로 농원 안에 스파 리조트와 호텔을 짓겠다는 구상도 모쿠모쿠에서 따온 것이다. 매일유업 김선희 대표는 “모쿠모쿠 농장이 성공한 것처럼 우리도 한국을 대표할 체험농장을 만들어 보자는 목표로 건축 자재나 디자인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며 “앞으로 5년 정도는 수익을 낼 생각은 하지 않고 프로그램을 정착시키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상하농원의 ‘6차산업’ 프로젝트가 국내 첫 시도는 아니다. 앞서 전북 임실의 치즈마을은 유제품 생산과 함께 치즈와 피자 만들기, 동물농장 등의 체험교실을 운영하며 연간 150억 원대 매출을 올렸다. 대관령목장 등 낙농업이 중심인 지역에서도 우유 짜기를 비롯한 각종 체험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현장학습 대상 1순위로 꼽는 코스들이다.

그러나 이 중 상당수는 영세한 규모로 운영돼 대규모 시설투자를 하거나 사업을 확장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브랜드 파워가 크지 않다 보니 전국적으로 제품을 유통, 판매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업체도 많다. 초반에 백화점 등에 납품하며 사업을 확장하다가 높은 수수료율, 상하기 쉬운 유제품의 질 유지 등의 문제로 거래를 중단한 사례도 있었다.

우유로 할 수 있는 모든 것

상하농원의 경우 유제품 생산 인프라와 유통망을 갖춘 대기업이 뛰어든다는 점에서 향후 사업 확장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도 쇠퇴해 가는 농업 경제를 활성화시키자는 차원에서 지원 의사를 밝히고 있다. 상하농원의 경우 정부와 지자체가 전체 370억 원의 설립 비용 중 27%에 이르는 100억 원을 부담했다.

낙농업계는 매일유업의 이런 시도를 주목하고 있다. 최근 우유 생산량은 크게 늘었는데도 소비가 줄면서 유제품의 값은 크게 떨어진 상태. 2012년 구제역 파동 이후 부족해진 젖소를 늘리는 정책을 쓴 결과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졌다. 그런데도 원유가 연동제에 묶여 가격을 조정할 수 없는 탓에 낙농업자들은 우유를 길바닥에 버리거나 젖소를 대량 도축해야 할 판이다.

더구나 최근 유제품 시장의 위기는 글로벌 현상이라는 점에서 단기간에 해결이 쉽지 않다. 유제품의 과잉공급, 시장의 수요 감소 등으로 국제 우유가격은 50%가량 하락했다. 유제품은 보관과 유통기한의 문제 등으로 수출도 쉽지 않다.

김선희 대표는 요즘 주말마다 상하농원을 찾아 공방 곳곳을 살펴보고 다닌다. 내년 봄 본격적인 관광철 개장을 앞두고 막바지 손질할 곳이 많다고 했다. 그는 “우유만 팔던 시대는 끝났다”며 “미래의 새로운 가치창출 모델을 찾기 위해 우유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창=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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