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송유근의 전화위복

송진흡기자

입력 2015-11-30 03:00 수정 2015-11-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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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흡 산업부 차장
2006년 4월 24일 중국 베이징 마이크로소프트(MS) 아시아연구소. 당시 9세로 인하대에 입학했던 ‘천재 소년’ 송유근 군이 입구에 들어서자 이곳 책임자였던 해리 셤 소장이 반갑게 맞았다. 이날 만남은 송 군의 ‘천재성’에 관심을 갖고 있던 MS 측 초청으로 이뤄졌다.

셤 소장도 송 군과 마찬가지로 ‘천재 소년’이었다. 그는 13세에 중국 난징(南京)대에 입학한 뒤 홍콩대에서 전자공학 석사, 미국 카네기멜런대에서 컴퓨터공학박사를 받았다. 셤 소장은 어린 시절이 생각났던지 송 군에게 조언을 했다.

“천재도 사람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긴 인생에 빨리 갈 필요 없어요. 여유를 갖고 느리게 재미있는 것들을 찾으세요.”

25일 송 군이 미국천문학회에서 발행하는 ‘천체물리학저널(Astrophysical Journal)’에 게재한 논문이 ‘자기 표절(self-plagiarism)’ 논란으로 취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송 군과 셤 소장의 만남에 동행했던 후배 기자가 들려준 일화다.

당시 셤 소장이 들려준 조언은 ‘천재급’ 연구원 200명이 모인 MS 아시아연구소에 송 군과 같은 10대의 중국 천재들이 들어왔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둔 것을 염두에 둔 충고로 들렸다는 게 후배 기자의 전언이었다. 그러면서 “송 군 주변 어른들이 ‘천재성’을 너무 급하게 부각시키려다 생긴 해프닝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사실 학계에서는 이번 논란이 심각한 연구 윤리 위반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줄기세포 연구처럼 없는 성과를 있는 것처럼 조작한 것이 아니라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또 다른 사람의 연구 성과를 인용 표시 없이 쓴 것은 문제지만 논문을 같이 쓴 지도 교수인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의 성과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정상 참작이 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특히 과학계에서는 송 군보다는 지도 교수인 박 연구위원이 성과를 부각시키기 위해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은 채 논문을 보낸 잘못이 더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박 연구위원이 이번 논란이 불거진 후 “13년 전 워크숍에서 발표한 내 논문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해 인용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이 실수”라며 “모든 잘못은 전적으로 내게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과학계 일각에서는 “송유근이 아니었으면 논란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마녀사냥론’도 나온다. ‘천재 소년’으로 부각된 송 군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논문에 대한 보다 엄격한 잣대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송 군이 이번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지도 교수와 함께 논문 공동교신저자로서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단독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면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만큼 이번 논란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이번 논란이 송 군에게 오히려 ‘약’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항상 천재 소년으로 칭찬만 받아오다가 세상의 비판을 사실상 처음 받은 것이 향후 연구 활동을 하는 데 있어 더욱더 겸손한 자세를 갖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송 군은 이번 논란이 불거진 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과학자는 결과로 말할 뿐이고 내가 부족하지만 항상 말이 행동보다 앞서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며 구차한 변명 대신 새로운 논문으로 논란을 잠재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또 취소된 박사학위에 대해서는 “박사가 됐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기 때문에 박사학위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송 군 발언을 들어보면 이번 논란으로 본인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처럼 보인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주변 어른들이 ‘국내 최연소 박사학위 취득’ 기록을 놓치지 않기 위해 조바심을 갖는 것이다. 벌써부터 “이번 논문에 발표된 새로운 방정식이 새롭고 우월한 내용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타고난 천재도 공들여 가꾸지 않으면 천재로 성장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공이 지나치면 결과가 나빠질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여유를 가지라는 셤 소장의 얘기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송진흡 산업부 차장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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