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금수저·흙수저 계급론’에 좌절한 청년들을 어쩔 것인가

동아일보

입력 2015-11-18 03:00 수정 2015-11-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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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재산에 따라 자녀의 경제 사회적 지위가 결정된다는 이른바 금은동(金銀銅)·흙수저의 ‘수저 계급론’은 빈말이 아니었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1970∼2013년 ‘한국에서의 부(富)와 상속’을 조사한 결과 자산 형성에서 상속과 증여가 기여한 비중이 1980년대 연평균 27.0%에서 2000년대 42.0%로 급증했다. 한 해 자산이 1000만 원 증가했다면 1980년대에는 730만 원을 스스로의 저축으로 불렸지만 2000년대에는 580만 원만 저축이고 나머지 420만 원은 부모에게 물려받았다는 뜻이다.

경제의 성장판이 닫히면서 자수성가할 기회가 줄어들고, 상속 증여가 없이는 부자 되기 힘들어진 사회로 바뀌고 있다. 김 교수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21세기 자본론’에서 갈수록 심각해지는 부(富)의 불평등 현상을 지적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분석 방법을 한국사회에 적용해 이 같은 결론을 냈다.

피케티의 연구에 일부 오류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한국 청년세대도 ‘부모가 최고의 자산’이라며 ‘세습 자본주의’를 기정사실로 여기는 분위기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뜻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다’는 영어 표현을 확대해서 부모의 재력이 좋아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도 잘살 수 있는 사람을 금수저, 가난한 부모 밑에 태어난 사람을 흙수저에 비유하는 ‘수저 계급론’이 유행처럼 나돈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맨손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군 기성세대는 요즘 청년들에게 “노력은 안 하면서 눈만 높다”고 비판하지만 청년들은 ‘노오력’해도 안 된다고 좌절하며 사회를 원망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보고서에서 “회원국들의 자국 내 빈부격차가 사상 최대로 커졌다”고 했다. 한국은 부유층 상위 10%의 평균 소득이 하위의 10.1배(2013년)로 OECD 평균 9.6배보다 높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는 “불평등은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좋은 면도 있지만 지나치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각자의 재능과 노력에 따라 생기는 ‘결과의 불평등’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년들이 ‘노력하면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린 사회는 미래가 어둡다.

어제 여덟 번 기운 운동화를 신고 다니면서 평생 모은 75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KAIST에 기부한 노부부가 화제가 됐다. 금수저를 대물림 하지 않는 기부문화 확산과 함께 정부와 사회지도층이 청년들의 좌절을 해소할 수 있는 ‘포용적 성장’의 해법을 찾는 데 보다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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