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위기의 제조업, 구조개혁이 답

동아일보

입력 2015-11-02 03:00 수정 2015-11-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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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
최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2분기 제조업의 매출 증가율이 ―6.3%로 역대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 조선 철강 석유화학 휴대전화 자동차 등 한국 수출을 이끌어 온 주요 대기업들의 경영실적도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다. 대우조선은 대규모 적자로 4조2000억 원의 신규 자금을 지원받을 만큼 상황이 악화됐고 다른 조선사들도 비슷한 처지에 있다. 그나마 2분기에 실적이 호전된 삼성전자도 내용을 뜯어보면 주력 분야인 휴대전화 사업이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교역액이 4년 만에 1조 달러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까지 나왔다.

최근 국내 제조업의 부진은 세계적 경기둔화와 공급과잉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인구구조 변화와 모바일 혁명으로 초래된 소비자 기호 변화와 신기술의 도래를 국내 기업이 선도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

최근 미래 유망산업으로 떠오르는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3D프린터 무인자동차 로봇산업은 모두 소프트웨어(SW) 중심의 기술집약형 혁신산업이다. 삼성이 휴대전화 시장에서 애플에 고전하고 국내 조선업계가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엄청난 적자를 본 것도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자체 SW를 개발하지 못했거나 핵심기술을 외부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의 상당수가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 같은 SW 위주의 혁신기업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 글로벌 산업 생태계의 상층부를 이들 기업이 점령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뉴욕시립대 제프 자비스 교수가 ‘구글노믹스’에서 밝힌 것처럼 공유경제를 통해 전 세계에서 가장 값싸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 앞으로 10년 후면 무인자동차 시장에서 구글이나 애플이 기존 자동차 회사를 앞지를 수도 있다.

따라서 국내산업의 중심축을 혁신산업 위주로 신속히 이동해야 ‘선도자(First Mover)’로서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전통산업 분야도 과거처럼 하청업체 쥐어짜기 식 원가 절감이나 하드웨어 개량을 통한 ‘따라잡기(catch up)’ 방식으로는 추격자들을 따돌리기 어렵고 자칫 혁신기업들의 글로벌 하청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 고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SW 분야나 핵심기술 분야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이유다.

혁신산업 위주로 산업구조가 재편되려면 생태계 조성을 위한 몇 가지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먼저 신산업 분야를 이끌 연구·기술인력 양성이 시급하다.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벤처기업 배후에는 스탠퍼드대가 있듯 미국이 혁신산업 분야의 선두를 달리는 경쟁력의 원천은 연구와 창업의 산실이 되는 대학 교육 시스템에 있다. 반면 국내 대학은 디테일에 약해 스페셜리스트는 육성 못하고 제너럴리스트만 양산하고 있다. 경쟁국 일본 중국과 달리 이공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1명도 내지 못한 이유이고 대학 교육 개혁이 시급한 이유다.

또 돈이 고위험 고수익 분야인 혁신산업으로 흐르게 해야 한다. 태생적 성향으로 상업은행은 혁신산업 분야에 대출을 늘리기 어렵다. 선진국처럼 자본시장을 육성해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 조달이 가능토록 해야 한다.

혁신산업은 신산업이므로 기존 규제로는 태동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핀테크나 빅데이터 산업은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와 이용이 필수적인데 지난번 카드정보 유출 사태로 규제가 강화돼 꽁꽁 묶여 있다.

끝으로 위험이 큰 미래산업 투자를 결정하는 데는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지금의 3, 4세 경영인들에게 창업가 같은 도전정신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투자를 주저하게 하는 요인들 즉, 적대적 인수합병 위험, 투자 실패 때 책임 추궁 같은 문제들을 풀어주면 기업가 정신이 살아날 수 있다.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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