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수강료 현금만 받는 탈세학원 철퇴

이상훈기자

입력 2015-10-13 03:00 수정 2015-10-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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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침해 탈세행위 세무조사

대부업자 A 씨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힘든 영세사업자나 신용등급이 낮은 개인을 상대로 연 200%의 고리로 자금을 빌려 줬다. 원금과 이자가 불어나 돈을 제대로 갚지 못하는 채무자에 대해서는 사업장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 권리금을 챙기는 식으로 빚을 회수했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차용증도 쓰지 않았다. 모든 거래는 배우자나 친인척 명의의 차명계좌를 이용하는 식으로 꼬리를 감췄다. 이런 식으로 탈세를 해오던 A 씨는 세무조사로 덜미가 잡혔다. 국세청은 A 씨를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검찰에 고발하고 10억 원을 추징했다.

국세청이 12일 대부업자, 고액 학원사업자 등 86명을 ‘민생침해 탈세자’로 규정하고 기획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은 최근 경제난 속에서 탈세를 일삼으며 서민을 괴롭히는 불법행위가 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민생침해 사범을 지속적으로 조사하고 있지만 불법 행위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조사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기획조사를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 대상에는 고액 수강료를 받은 학원들이 대거 포함돼 눈길을 끌고 있다. 국세청은 수강료 외에 특강비, 레벨 테스트비, 교재비 등의 명목으로 학부모에게 부대비용을 요구하는 학원사업자에 대한 검증을 강화할 계획이다. 일부 학원에서는 차명계좌 번호가 찍힌 지로용지로 학원비를 받거나 아예 현금으로만 수강료를 받아 소득을 숨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학기 초나 방학 때 유명 사교육 전문가를 초빙해 학부모를 상대로 입시설명회를 열어 과도한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학원들이 소득을 탈루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이들을 집중적으로 감시할 계획이다.

프랜차이즈업체 중에서는 가맹점에 인테리어 공사를 빈번하게 요구하는 회사가 집중 조사 대상이다. 최근 세무조사로 적발된 B사는 본사가 직접 가맹점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공사비에 대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고 임원 명의의 차명계좌로 돈을 받는 식으로 소득을 탈루했다. 이 회사는 본사의 지위를 악용해 연 1, 2회씩 공사를 강요했고, 이를 거부하는 가맹점은 계약을 해지하는 식으로 횡포를 부렸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번 기획조사에서 본인은 물론이고 친인척 등 관련자의 탈세 행위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것”이라며 “장부 등 증빙서류를 파기하거나 은닉, 조작한 사실이 확인되면 금융거래 추적조사 및 거래 상대방 확인조사 등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기획 세무조사를 계기로 국세청의 칼날이 더 날카로워질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해 8월 임환수 국세청장 취임 이후 세무조사와 같은 ‘채찍’보다는 성실신고 유도에 집중해 왔다. 올해 국세청이 거둔 세금이 사상 처음으로 2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른바 ‘세수 펑크’를 피하게 된 국세청이 행동반경을 민생침해 사범 등으로 넓히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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