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섭 前 LG전자 노조위원장의 ‘노동개혁 해법’

박형준기자

입력 2015-10-01 03:00 수정 2015-10-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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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勞는 힘 합쳐 1등 기업 만들고 使는 직원들 최고대우 해줘야”

최근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재섭 전 LG전자 노조위원장이 ‘바람직한 노동개혁 방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제 노사 모두 자신들만의 잔치판을 끝내야 할 때입니다. 상대방에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자신들이 무엇을 할지 먼저 제시해야 합니다.”

유재섭 전 LG전자 노조위원장(65)은 최근 서울 관악구 보라매동의 한 카페에서 본보 기자와 만나 ‘노동개혁 해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최근 노동계와 재계 모두 노사정 합의사항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는 것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유 씨는 노사의 극한 대립, 그 후 협력적 상생관계를 모두 경험한 사람이다. 그는 LG전자 노조가 사상 최악의 파업을 벌였던 1989년 노조 사무국장을 지냈다. 이듬해에는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돼 1996년까지 3연임하면서 LG전자의 전투적 노조문화를 180도 바꿨다. 그 공로로 1992년 동탑산업훈장을 받았고 2008년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을 거쳐 현재 제주한라대 석좌교수로 지내고 있다.

유 씨는 1989년 당시 상황에 대해 “지게차로 경부고속도로를 막았고, 창원공장 조합원들은 대로에 폐유를 뿌리고 방화까지 했다. 124일간 이어진 파업으로 LG전자는 가전업계 1위에서 2위로 내려앉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현실에 바탕을 둔 노동운동을 지향한다. 그 덕분에 최악의 파업 후 노조원들은 실용주의 노선을 지향한 그를 노조위원장으로 추대했다.

전투적 노사문화를 어떻게 바꿨는지 물었더니 “노조위원장이 되자마자 회사 측에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 가전시장 1위를 탈환하겠다. 그 대신 회사는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며 “노조만 살자고 해선 안 된다. 회사와 노조가 모두 상생하는 제안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씨는 노조위원장 시절인 1994년에 ‘품질과 생산은 우리가 책임지겠다’는 LG전자 광고를 찍었다. ‘어용 노조’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각오를 했다. 그 덕에 LG전자의 전투적 노조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었음을 전국에 알릴 수 있었다.

그는 상하 개념의 ‘노사(勞使)’라는 단어 대신 수평 개념의 ‘노경(勞經)’이란 단어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노경은 노동자와 경영자를 의미하는 말로 지금도 LG그룹은 노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노경이라고 말한다.

최근 노사정 합의에 대해 유 씨는 “3자가 합의에 이르렀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최대 쟁점이었던 ‘유연한 노동시장’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한 점에 대해선 “쉬운 해고는 노동자 처지에서 보자면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는 조치다. 사회안전망부터 먼저 보강하고 사장이 해고 권한을 남용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노동계가 ‘열심히 일하면 잘리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게끔 만들어야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지난달 23일 민주노총의 ‘노동개악 저지’ 총파업에 대해선 “결과를 놓고 반대만 할 게 아니라 협의의 과정에 참여해 자기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비판했다. 경제 5단체가 ‘노동개혁이라고 평가하기엔 매우 부족하다’는 성명을 낸 것에 대해서도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개선된 부분에 대해서는 박수를 쳐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사 관계는 정석이 없다. 서로 신뢰를 얻어야 긍정적 합의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 묻자 “노조위원장 시절 ‘우리가 열심히 일해 가전업계 1위를 탈환하겠다’고 먼저 제시했다. 그렇게 한발 물러서면 된다”고 말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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