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단일 가치관 맹종하는 일본… 미디어가 제 역할해야”

김준일기자

입력 2015-08-31 03:00 수정 2015-08-3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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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야가 좁고 상상력이 부족한 인간일수록 내부에서밖에 통용되지 않는 ‘아름다운 나라’ 같은 단어를 중얼거리는 법이다. ―걷는 듯 천천히(고레에다 히로카즈·문학동네·2015년) 》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일본 영화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책에서 일본 사회를 이렇게 비판한다.

히로카즈 감독은 책에서 ‘섬나라 근성’이라는 집단 비하적인 단어를 서슴지 않는다. 사면이 바다로 가로막혀 있는 지리적 한계 때문에 (외부 세계가 보기에는 폭력으로밖에 부를 수 없는) 단일한 가치관에 무비판적으로 몸을 맡기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은 듯한 착각에 빠진 것이 일본 사회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사회비판을 담은 사회과학서적이 아니다. 히로카즈 감독의 성장기 추억과 일상 풍경 등을 담은 가벼운 에세이집이다. 그럼에도 그는 책의 일부분을 할애해 단일 가치관에 맹종하는 경향이 가득한 일본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히로카즈 감독은 일본 사회가 맞닥뜨린 정신적 위기를 타개하려면 미디어가 제구실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일본 미디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지금의 일본 사람들에게 가장 불행한 것은 외부에 있어야 할 미디어가 완전히 내부의 세상과 일체화되고, (내부 세상) 가치관에 영합해 오히려 마을의 외벽을 보강해 버렸다는 점이라고.

히로카즈 감독은 미디어는 유목민과 같은 형태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디어가 외부의 눈으로 정주자(定住者)에게 각성을 촉구해야 하며 이를 통해 타자와 접촉할 수 있는 장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서 히로카즈 감독은 섬나라 근성으로 일본 사회에 널리 퍼진 위험한 ‘단일 가치관’이 무엇인지 특정 짓지는 않는다. 다만 최근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경화 작업과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한 침묵 등을 우회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일본 사회는 위안부 문제와 침략전쟁을 사과하는 문제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할 만큼 했다’라는 아베 신조 정권의 입장에 동조하는 일본 국민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 지금 필요한 것은 ‘마을 외벽’을 허물어줄 유목민적 미디어라는 히로카즈 감독의 말에 귀 기울여 할 시점이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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