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설득의 리더십… 노조도 “고용 상생” 화답

이샘물 기자, 정세진 기자 , 황태호기자

입력 2015-08-21 03:00 수정 2015-08-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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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 全계열사 임금피크제 도입

“임금피크제 도입을 정부 주도로 제도화하는 것을 기다리기보다 기업들이 노사합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사진)은 임금피크제 도입에 대해 평소 이 같은 의견을 밝혔었다. 정년 60세 연장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무작정 정부가 알아서 해주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대한상의 회장으로서 재계에 수차례 강조한 것이다. 두산이 이번에 선도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노사합의를 통해 무리 없이 도입한 것 역시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오래전부터 대비해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 두산중공업의 성공이 마중물


두산중공업 노사는 2012년 정년을 56세에서 58세로, 2013년엔 58세에서 60세로 늘리면서 그룹 계열사 중 처음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퇴직을 앞둔 직원들이 정년이 늘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것에 적극 찬성한 것이다.

이 제도가 두산중공업에서 성공적으로 정착되면서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등 주요 계열사에도 순차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올해 6월 말과 7월 초에는 두산엔진과 두산DST, ㈜두산 전자BG, ㈜두산 산업차량BG 등 4곳의 사무직 직원들도 내년 1월부터 임금피크제 도입에 동의했다.

두산 관계자는 “기술직은 모든 계열사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을 노조와 협의해 이미 시행하고 있지만 일부 사무직에 대해서만 동의를 얻는 절차가 완료되지 않아 최종 마무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산이 모든 계열사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 위해 노조의 동의를 얻는 과정은 비교적 원만했다. 일부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 할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사무직에 대해 동의서를 받는 것은 절차상의 문제였지 ‘하자’ ‘말자’의 논란은 거의 없었다는 게 두산의 설명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고용노동부에서 임금피크제 모범기업 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 합리적인 노사관계가 원동력

두산의 이번 합의는 박 회장이 평소 임금피크제 등을 포함한 노동개혁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보고 오랜 시간 공들여 추진한 영향이 크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평소 박 회장은 전체 근로자의 약 8%에 불과한 노동단체에 가입한 대기업 노조가 노동계를 좌지우지하고 있어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일자리를 줄이고 있다고 우려했다”고 전했다.

강성이던 두산의 노조가 과거보다 유연해진 점도 원만한 합의가 이뤄진 배경이다. 두산중공업 노조는 금속노조 산하 단일노조이지만 2006년부터 최근까지 연속으로 임금협상과 단체협약을 무분규로 타결했다. 사측에서 복리후생 수준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평소 노조와의 소통에도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2011년 7월부터 복수노조 설립이 가능하게 되면서 그룹 내 계열사별로 노조의 성격이 달라지고 일부 계열사에는 복수노조가 생긴 점도 영향을 끼쳤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민주노총 같은 상급단체의 입김이 강해 강성 이미지가 강했던 두산이 최근에는 다양한 노조원의 의견이 수렴되면서 합리적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 “정부 추진 노동개혁에 큰 힘”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현재 자산총액 기준 상위 30대 그룹 주요 계열사 378개 중 177개(47%)만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상황이다. 삼성 등 자산총액 기준 1∼15위 그룹은 계열사 275개 중 151개(55%)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삼성그룹은 2014년 전 계열사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시행은 2016년부터로 정년이 연장되는 56세부터 매년 전년도 연봉의 10%씩을 감액하는 방식으로 임금 외 기타 복리후생은 이전과 동일하게 제공된다.

LG그룹은 2007년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 전자부문 계열사 먼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고 LG CNS, 서브원 등은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주요 17개 계열사 중 SK하이닉스, SK텔레콤, SKC, 워커힐 등 4개사가 임금피크제를 실시하고 있는 SK그룹은 단계적으로 다른 계열사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두산의 임금피크제 도입을 계기로 현대·기아자동차 같은 대규모 사업장에서도 자율적으로 합의가 이뤄지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의 실마리가 풀리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샘물 evey@donga.com·황태호·정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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