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 기자의 스포츠 인생극장]<42>영원한 현역 골퍼 최상호

김종석 기자

입력 2015-06-29 03:00 수정 2015-06-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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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을 경기같이’ 원칙… 환갑인 지금도 실천

경기 고양시 원당에서 농사짓던 집안의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10대 소년이 골프라는 낯선 스포츠를 처음 접한 것은 1970년 무렵이었다. 아카시아꽃과 산딸기를 따먹으며 뛰놀던 그의 집 근처에 어느 날 골프장(뉴코리아CC)이 개장했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어른들이 자치기 같은 걸 하고 있었다. 재밌어 보여 용돈도 벌 겸 골프연습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며 입장 쿠폰도 받고 채도 닦아줬다. 그러다 프로에 입문한 게 어느새….”


○ 국내투어 60승… 8월 KPGA 선수권 출전

한국프로골프(KPGA)에서 ‘영원한 현역’으로 불리는 최상호(60). 국내 정규 투어 최다승(43승) 기록을 보유한 그는 시니어투어(50세 이상)를 거쳐 요즘도 그랜드투어(60세 이상)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내 투어에서 거둔 우승 횟수를 합하면 그의 나이와 똑같은 60회다. 서울 강남구 자택에 모아둔 트로피는 방 하나를 채우고도 남는다고 한다.

24일 경기 성남시 남서울CC 클럽하우스에서 그를 만났을 때 맨 먼저 큼지막한 버클의 빨간색 타이틀리스트 허리 벨트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나 나이 들면 자꾸 젊어지려는 거 아닌가. 칙칙한 것보다는 원색으로 깔끔하게 입으려 한다. 와이프도 밝게 입으라고 하고…. 김 기자도 50 넘으면 그럴 거야. 허허.”

두 살, 다섯 살 손주를 둔 할아버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 차림새만큼이나 그의 실력은 여전히 자식뻘 되는 후배와 당당히 맞설 정도다. 올해 매경오픈에서 역대 최고령 예선 통과 기록을 세웠다. 8월에 34년 전 첫 우승을 시작으로 통산 7차례나 정상에 올랐던 메이저 대회 KPGA선수권에도 출전할 계획이다. 그랜드투어에서도 시즌 2승을 거뒀다.

장수 비결을 묻자 그는 “클럽, 볼 등 좋은 장비가 너무 많이 나온다. 내가 20대 때 퍼시먼(감나무) 드라이버로 230야드 쳤는데 지금은 티타늄 드라이버로 평균 260야드를 보낸다”며 웃었다. 하지만 연장이 좋아진 건 그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닐 터. 그는 “연습 말고는 왕도가 없다”고 말했다. “당구 바둑처럼 내겐 골프가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했다. 매트도 없는 맨땅에서 수없이 공을 쳤다. 매일 1300개 이상 공을 때린 세월도 20년이 넘을 것이다. 53세 때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갔다. 의사에게 일주일에 여섯 번 라운드하고 하루 500개 공을 친다고 했더니 당장 관두라고 하더라.”


○ 프로테스트 7번 도전 만에 통과


최상호가 후배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우승을 많이 할 수 있느냐다. 1980∼96년 중 무관에 그쳤던 시즌은 1988년 한 해뿐이다. “나라고 왜 슬럼프가 없겠는가. 프로 테스트는 6번 떨어진 뒤 7수 만에 합격했다. 말하기는 쉬운데 실천이 안 되는 게 있다. 연습을 경기같이, 경기를 연습같이 하는 것이다. 난 대회가 없는 주에도 대회 때와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연습볼을 치고 라운드를 하면서 늘 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골프가 직업이니까 관둘 때까지 그럴 것이다.”

스포츠 스타는 자식에게도 같은 길을 가게 하는 때가 많다. 하지만 그는 두 아들에게 어릴 때부터 골프의 ‘골’자도 못 꺼내게 했다. “내가 평범하고 우승을 못했다면 아이들에게 기대를 해보려고 시켰을지 모른다. 주위를 보면 잭 니클라우스, 게리 플레이어 같은 대선수들도 자식들이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골프는 유전적인 영향보다는 노력이 중요하다. 공부하듯 외워야 하기도 하고, 죽어 있는 공을 멀리 보내야 하고, 코스 자연과 싸워야 하는 게 골프다. 아빠는 운이 좋았지만 아들에게 힘든 짐을 지워주고 싶지 않았다.” 두 아들은 모두 국내 명문대를 졸업해 각각 대기업 직원과 회계사로 일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자간의 골프 라운드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 골프는 에티켓과 룰의 스포츠

최상호는 아들뿐 아니라 주말골퍼들과 운동할 때면 늘 강조하는 게 있다. 바로 에티켓과 룰이다. “골프는 재밌게 즐겁게 치고 남한테 피해 안 주면 그만이다. 특히 벙커 정리가 중요하다. 어떤 분들은 벙커에서 발자국 안에 들어간 공은 아예 밖으로 빼고 치자고 하더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터뷰 시작 2시간 정도가 흘렀을 무렵 그는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하는 눈치였다. “1시간 후 티오프인데 몸 좀 풀어야 할 것 같다.” 양해를 구하는 그에게 요즘도 골프장에 오면 가슴이 설레는지 물었다. “설사 OB가 나고 양파(더블파)를 해도 이게 끝이 아니고 다음이 있고 내일이 있다는 게 바로 골프의 매력 같다. 그래서 꾸준히 하게 된다.” 주름진 그의 얼굴에 10대 소년 같은 해맑은 미소가 퍼졌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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