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정세진]메르스, 특별한 소수

정세진 산업부 기자

입력 2015-06-11 03:00 수정 2015-06-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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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진 산업부 기자
가난한 흑인 여성이라는 콤플렉스를 딛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혀온 오프라 윈프리는 마케터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물이다. 그녀가 TV에서 소개한 책은 바로 베스트셀러가 된다. 거대한 미국 출판시장에서 그녀가 추천한다는 것은 저자와 출판사에 돈벼락을 뿌려주는 것이나 같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맬컴 글래드웰도 그의 저서 ‘티핑 포인트’에서 1990년대 중반에 특별한 이유 없이 신발 브랜드인 ‘허시 퍼피’의 인기가 치솟은 현상을 비슷한 이유로 설명했다. 한물간 상표로 인식된 이 신발을 뉴욕에서 유행을 주도하는 몇몇이 신자 이 회사의 매출이 2년 만에 20배로 뛰었다는 것이다.

마케터들은 윈프리와 같이 유행을 주도하는 특별한 소수를 ‘영향력 행사자’라고 불러왔다. 당연히 이들을 찾아내 상품 판매에 이용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믿었다.

소수의 사람이 어떤 일을 좌지우지한다는 생각은 뿌리가 깊다. 가령 위인 중심의 역사관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는 소수의 결정적인 지도자가 있다고 설명한다.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항상 은밀히 움직이는 정부 요원이나 비밀결사대가 배후에 있다는 음모론이 나온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스탠리 밀그램은 여섯 명만 거치면 누구와도 연결된다는 이른바 ‘여섯 단계 분리’의 이론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했다. 여섯 단계를 거치는 동안 특정한 소수가 최종 목표 인물에 닿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마케터들과 달리 전염병 학자들은 이들 특별한 소수를 ‘슈퍼 전파자’라고 부르며 막으려고 해왔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이런 슈퍼 전파자들이 등장해 초기 확산의 방아쇠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강력한 전파력을 가진 1번과 14번 환자 때문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바이러스가 퍼졌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우리가 믿어왔던 소수의 법칙에 의문을 제기한다. 특정한 소수가 사회 전반에 유행 혹은 전염병을 전파할 때 개인의 영향력보다는 당시의 환경이나 조건이 크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가령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넓은 땅을 태우려면 바람, 온도, 건조한 날씨, 가연성 연료 등이 함께 영향을 끼쳐야 한다. 영향력이 있는 소수의 사람이 유행과 전염병을 전파할 때는 그만한 조건이 갖춰졌기 때문이라는 의미다.

한국에서 메르스의 전파 속도가 빨랐던 것 역시 빡빡하게 붙은 병상 구조, 바이러스를 배출시킬 환기구마저 없는 열악한 병원 환경, 응급실에서 장시간 대기하는 한국 병원의 특수성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가족 단위의 병간호와 문병 문화도 확산을 부추겼다.

마케터들은 최근 막대한 광고비를 주고 특별한 소수를 찾는 대신 영향력은 작지만 비용이 덜 드는 다수를 표적으로 하는 마케팅 전략을 짜고 있다. 방역 당국도 이번 사태를 특별한 소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슈퍼 전파자가 되지 않도록 진료 환경과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정세진 산업부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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