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떠야 전국서 뜬다… ‘소비재 테스트베드’로

박창규기자 , 염희진기자

입력 2015-05-20 03:00 수정 2015-05-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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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순하리’-빙수 체인 ‘설빙’ 등… 부산지역 성공 발판삼아 유통 확대

“아지매, 순하리 있어요?”

요즘 부산 지역 대학가 주점에서 종종 들려오는 얘기다. 롯데주류가 3월 출시한 리큐르(술에 과즙, 향료 등을 섞은 알코올 음료) ‘순하리 처음처럼(순하리)’은 최근 부산·경남 지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알코올 도수가 14도로 일반 소주(17도 안팎)보다 낮고 유자향을 추가해 여성 고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출시 두 달 만에 500만 병 이상 팔리고 품귀 현상까지 벌어지자 부산 지역 일부 대형마트, 편의점은 1인당 2병씩 구매량을 제한할 정도다. 예상보다 높은 순하리의 인기에 고무된 롯데주류는 전국으로의 판매 확대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디아지오코리아는 이달 초 영국 본사로부터 항공편으로 ‘윈저 W 아이스’를 공수해왔다. 3월 국내 출시 때 준비했던 3개월 물량(3000상자, 약 10만 병)이 한 달 만에 다 팔려 당장 도매상에 공급할 물량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윈저 W 아이스 역시 처음 타깃을 부산으로 잡았다. 그리고 시장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나오자 전국 판매를 고려하고 있다. 일본 수제 승용차 브랜드 ‘미쓰오카’는 2013년 국내 시장에 재진출하면서 서울이 아닌 부산을 교두보로 삼고 광안리에 매장을 열었다.

부산이 소비재·유통업계의 ‘테스트베드’로 각광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 및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해 부산 지역 고객들의 ‘남다른 역동성’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또 소비자들이 새 제품이나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적고 유행에 민감하며 구 단위 지역 간 격차가 비교적 적은 350만 단일 상권이란 점도 부산 지역의 매력이다.

부산은 예전부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었다. 항구도시로 외항선원, 관광객도 많이 몰리는 데다 6·25전쟁 때는 전국의 피란민들이 이곳에 정착하기도 했다. 또 부산은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에서도 유행의 진원지가 됐다. 실제로 노래방이나 편의점 문화는 부산에 먼저 상륙한 후 서울로 올라왔다.

이런 이유로 부산 지역에서의 성공은 ‘전국 흥행 성공’의 보증수표로 통한다.

유행에 민감한 350만 단일상권이 매력 ▼

부산발(發) 유행은 최근 ‘경상도 음식은 별로 맛이 없다’는 편견을 깨고 먹을거리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2013년 4월 부산 중구에 문을 연 빙수 전문점 ‘설빙’은 폭발적 인기를 등에 업고 그해 10월부터 가맹점 모집을 시작해 현재 전국에서 490여 개 매장이 성업 중이다. 고급 재료를 쓴 참살이(웰빙) 먹거리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고봉민김밥人’도 부산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여준상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기업들이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전면적인 마케팅을 벌이다 보면 실패 시 리스크도 클 수밖에 없으므로 초기 고객 반응을 탐색하기 위한 테스트베드는 필수”라며 “부산 소비자들은 외부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반응도 빠르고 적극적이어서 제품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에 적합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부산 사람들이 유행에 민감하다는 것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한국리서치가 올 초 지역별 제품 구매 행위와 생활 패턴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남들보다 특이하게 보이려는 경향과 편안함보다는 패션을 중요하게 여기는 부산 지역 20, 30대 비율은 각각 28.0%와 31.0%로 전국 평균(22.7%와 27.5%)을 웃돌았다. 신제품을 먼저 구매하려는 성향(28.1%)도 전국 평균(25.4%)보다 높았다.

자신을 드러내는 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중장년층이 적지 않은 점도 부산 지역의 특징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고급 수입차 포르셰의 부산 점유율은 2.12%로 서울(1.13%)의 2배 정도다. 중소형 차량이 주력군인 폴크스바겐의 부산 점유율(8.55%)이 서울(19.45%)의 절반 수준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기주 한국리서치 이사는 “부산 주민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에 적극적이며 새로운 트렌드나 차별화된 모습에 민감한 편”이라며 “젊은층과 중장년층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용도에 큰 차이가 없는 점도 부산 지역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일부 업체는 일찌감치 이러한 부산 지역의 특성을 감안한 마케팅 전략을 내놓았다. 신세계의 프리미엄 슈퍼마켓인 SSG푸드마켓은 2012년 6월 1호점을 당시 고층빌딩이 밀집해 ‘신흥 부촌’으로 뜨고 있던 해운대 마린시티에 전국에서 가장 먼저 열었다. 볼보코리아는 지난해 12월 해운대 지역에 전국 최대 규모의 전시장을 새로 개설했다.

박창규 kyu@donga.com·염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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