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스케치]유커 없는 곳 찾는 유커들… “한국 진짜 모습 보고 싶어”

염희진기자

입력 2015-05-16 03:00 수정 2015-05-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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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中관광객의 서울 여행 따라가봤더니

지난달 20일 4박 5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유천시 씨가 딸을 안고 일행과 함께 서울 종로구 이화벽화마을 골목길을 걷고 있다. 이곳은 최근 몇 년 새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가장 뜨고 있는 관광지 중 하나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여행사가 짜놓은 단체관광이 아닌 개별적으로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遊客·유커)이 늘어나며 ‘고가의 해외 유명 브랜드를 쓸어 담고, 시끄럽게 몰려다닐 것 같은 유커’에 대한 이미지도 달라지고 있다.

본보는 하루 동안 한국을 찾은 젊은 유커 4명의 서울여행을 따라다녔다. 이들을 하루 종일 지켜본 결과, 개별 여행을 온 유커들은 생각보다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 깐깐한 소비자였고, 한국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중국인 관광객 밀집지역보다 한국인도 잘 모르는 서울의 후미진 뒷골목을 더 선호했다.

“중국인이 잘 가지 않는 관광코스로 가주세요”

금융업에 종사하는 허솽(賀爽·32), 쉬멍(徐夢·32) 씨 부부와 자영업을 하는 왕화둥(王華東·26), 유천시(尤陳천·23) 씨 부부는 각각 네 살, 여섯 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지난달 20일 한국에 입국했다. 4박 5일 동안 서울을 비롯해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를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허솽 씨의 부인 쉬멍 씨를 제외하고 이들은 모두 한국 여행이 처음이다.

이들은 여행에 앞서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중국 관광가이드 유지인 씨를 개별 가이드로 고용했다. 여행 둘째 날인 21일 하루만 서울 여행지에 대한 안내를 부탁하는 조건이었다. 이들이 유 씨에게 주문한 것은 ‘중국인 관광객이 잘 가지 않는, 그러면서 한국의 진짜 모습을 잘 알 수 있는 곳으로 여행 코스로 짜 달라’였다.

전날 밤 서울 중구 명동의 한 비즈니스호텔에서 묵은 이들은 21일 오전 11시경 종로에 있는 낙산공원에 도착했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평일이라 한적했다. 몇몇 젊은 유커가 찾아와 사진을 찍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공원을 한 바퀴 돈 뒤 낙산 아래 이화벽화마을로 향했다. 낡고 오래된 산동네가 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되살아난 이곳은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로 붐볐다.

남편들은 길이 좁고 계단이 많아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것을 힘들어하다가도 사진 찍는 명소 곳곳에 멈춰 서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유천시 씨는 “낙후된 예전 마을의 모습을 간직하면서 곳곳에 벽화와 전시물을 통해 매력적인 관광지로 변한 곳은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며 만족해했다.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는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한국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등에 소개되며 외국인의 필수 관광 코스로 자리 잡았다. 유지인 씨 제공
드라마 ‘별그대’ 촬영장소는 필수 코스

점심이 되자 이들은 대학로로 내려와 ‘낙산가든’으로 가 불고기를 주문했다. 유 씨는 “여행 전부터 삼계탕, 떡볶이, 철판볶음밥 등 한국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 목록을 주며 그중에서도 불고기는 꼭 먹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이들이 향한 곳은 건너편의 ‘학림다방’이었다.

이곳은 쉬멍 씨와 유천시 씨가 꼭 가보고 싶어 한 곳이었다. 중국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한국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촬영지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드라마 속 주인공인 도민준은 장 변호사와 장기를 뒀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유천시 씨는 한국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계기가 한국 드라마였다고 했다.

그는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한국 사람들은 피부도 좋고 패션감각이 뛰어나다는 인상을 받았다. 패션과 화장품 유행은 솔직히 한국이 프랑스 파리보다 더 앞서 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쉬멍 씨도 “저렴하게 쇼핑을 하고 싶으면 홍콩에, 최신 유행 경향을 접하고 싶으면 한국에 온다”고 덧붙였다. 이들에게 한국 드라마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매개체였다. 저녁에 들른 종로구 ‘광장시장’도 허솽 씨가 꼭 가보고 싶었던 곳. 한국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의 마니아인 그는 런닝맨에 광장시장이 소개된 후로 이곳을 필수 코스로 점찍어 놨다고 했다.


유아용품과 화장품에 지갑 열다

늦은 오후가 되자 이들은 신사동 가로수길에 도착했다. 아이들을 태운 유모차를 끌고 이들은 가로수길 뒷골목에 들어선 ‘체리코코’라는 이름의 옷가게로 향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출발했던 이 가게는 중국인 여성들의 입소문으로 중국 현지에 진출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여성들은 서로의 옷을 골라주며 모자와 치마 등 총 7만 원어치를 구입했다. 택스리펀드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후 여러 옷가게에 들어갔지만 옷을 구입하지는 않았다. “마음에 들지만 너무 비싸다”는 이유에서였다.

생각보다 쉽게 열리지 않던 지갑은 유아용품 매장을 지나면서 열리기 시작했다. 특히 남편들은 나이키 프리미엄 제품을 판매하는 ‘훕소울(Hoop Soul)’ 매장에서 아이들의 운동화를 고르는 데 신이 났다. 두 남성들은 각각 자녀를 위해 8만9000원짜리 운동화를 사줬다. 왕화둥 씨는 “중국에서는 이런 유아용 제품 매장에서 사고 싶은 물건이 있어도 줄서서 사야 할 정도다”라며 “한국은 다양한 제품을 편안하게 구매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저녁 일정이 모두 끝나고 마지막으로 들른 중구 롯데면세점 본점. 이들은 이곳에서 가장 많은 돈을 썼다. 지인들이 사달라고 부탁한 화장품과 선물용 화장품, 자신을 위해 구매한 화장품을 모두 합치면 1인당 150만 원가량 썼다고 유 씨는 귀띔했다. 면세점 영업시간이 끝나는 오후 9시까지 화장품 쇼핑을 한 이들은 미처 구매하지 못한 화장품을 사러 명동 화장품 거리로 향했다. 이들이 필수 구매 목록에 적은 화장품들은 ‘바닐라코’의 클렌징, ‘잇츠스킨’의 달팽이크림, ‘헤라’의 쿠션 제품, 마스크팩 등이었다. 가이드 유 씨는 “한 브랜드에서 일괄적으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별로 좋은 품목들을 꼽아서 온다”며 “한국 사람들보다 더 한국 화장품에 대해 빠삭하게 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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