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철들게 만든 건 8할이 군인정신

김종석기자

입력 2015-04-29 03:00 수정 2015-04-29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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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무로 거듭난 스포츠스타들

프로골퍼 허인회(28)는 별명이 참 많았다. ‘필드의 반항아’, ‘자유로운 영혼’, ‘4차원’…. 모터레이싱을 즐기는 스피드광으로 머리를 알록달록하게 염색하거나 장발족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 경북 문경의 국군체육부대에서 일병 허인회를 만났을 때 짧은 머리에 ‘다’와 ‘까’로 끝나는 군인 특유의 말투가 몹시 어색했다.

하지만 군복을 입은 지 불과 4개월여 만에 그는 달라져 있었다. 허인회는 26일 끝난 한국프로골프투어 2015시즌 개막전인 동부화재오픈에서 국군체육부대 소속 선수로 우승한 뒤 절도 있는 거수 경례 세리머니를 했다.

뛰어난 신체 조건에 엘리트 프로골퍼의 코스를 밟았던 허인회는 연습장과 담을 쌓은 데다 수입 자동차 사업 등으로 한눈까지 팔면서 주위의 기대에 못 미쳤다. ‘게으른 천재’로 불리던 그는 군대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허인회는 “정신 자세가 바뀌었다. 꾸준한 체력 훈련으로 지칠 줄 모르게 됐다. 새로운 허인회가 태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군대 가야 철이 든다’는 말은 스포츠에도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프로야구 최고 거포인 박병호(넥센)는 성남고 시절 4연타석 홈런을 날리며 일찌감치 이름을 날린 유망주였다. 하지만 2005년 프로 입단 후 좀처럼 벤치를 벗어나지 못했다. 2006년 상무에 입단한 그는 퓨처스(2군)리그 홈런왕과 타점왕에 오르며 거포의 본색을 되찾았다. 박병호는 “처음으로 나를 돌아보며 마음 편하게 야구를 했던 시기였다. 자신감도 갖게 됐다”고 군 복무 시절을 떠올렸다. 프로야구 삼성 최형우, 박석민 등도 군 입대 전과 후가 180도 달라진 대표적인 선수로 꼽힌다.

프로축구 전북 이동국은 “2002년 월드컵 대표에서 탈락한 뒤 2주 동안 평생 마실 술을 다 마셔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은 좌절에 빠졌었다”고 말했다. 참담한 심정으로 입대했던 그는 “국군체육부대에서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묵묵히 훈련하는 장면을 본 뒤 해머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능력만 믿고 노력을 하지 않았구나 하는 반성과 후회가 컸다”고 회고했다. 군대 들어갈 때 이제 끝났다고 손가락질받았던 이동국은 제대한 뒤 박수받으며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국군체육부대 소속 이정협은 대표팀에 전격 발탁돼 출전한 아시안컵에서 눈부신 활약으로 ‘군데렐라’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냈다.

프로농구 모비스 3연패의 주역인 양동근은 “군 복무를 하면서 농구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한 단계 성숙된 것 같다. 팀과 가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였고 책임감이 늘었다”고 했다.

국군체육부대 전귀찬 참모장(대령)은 “선수이기에 앞서 군인인 만큼 은근과 끈기를 앞세운 강한 정신력을 강조하고 있다. 경기에서 지더라도 패기만큼은 져서 안 된다. 군인 선수들의 활약은 군 이미지 개선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윤영길 한국체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여러 가지 방식의 터닝 포인트가 있다. 환경이 낯설고 단체 행동을 강조하는 군대는 선수들의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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