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Case Study]‘식스시그마 전도사’ 손욱 회장이 말하는 혁신의 지혜

정지영기자

입력 2015-02-02 03:00 수정 2015-02-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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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내낸 혁신은 필패… 열망-인재를 키워라”

손욱 행복나눔125운동본부 회장은 “혁신의 가치를 알고, 이를 직원과 공유하는 것이 혁신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바둑에서 정석을 공부하지 않고 일류 기사의 기보만 외워 대국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혁신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외국 기업의 혁신 방법만 따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식스시그마 전도사’ ‘최고의 테크노 최고경영자(CEO)’라는 별명을 가진 손욱 행복나눔125운동본부 회장의 혁신에 대한 통찰이다. 그는 고(故)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을 보좌하며 삼성의 기술 혁신을 주도했다. 또 삼성전기와 삼성전자, 삼성SDI의 프로세스 혁신과 전사적 정보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1993년 삼성 신경영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 수행팀장으로 이건희 회장을 보필했으며 2006년 현직 CEO로는 최초로 서울대 공과대학 최고산업전략과정 주임교수로 임용됐다. 농심 회장을 거쳐 현재는 1주일에 한 번 선행하고, 1개월에 책을 두 권 읽으며, 하루 다섯 번 감사하자는 취지의 운동인 행복나눔125운동본부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DBR가 손 회장을 만나 혁신에 대한 경험과 통찰을 들었다. 인터뷰 전문은 DBR 169호(1월 15일자)에서 만나볼 수 있다.


―혁신이란 무엇인가.

혁신은 세계에서 앞서 가는 방법들을 찾아내거나 스스로 개발해 자사의 현실에 맞춰 활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고객의 가치를 창조하고 경쟁사보다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선진 기업과 일류 기업, 후진 기업과 보통 기업의 차이는 ‘혁신’에서 나온다. 현실에 안주하고 새로운 혁신을 두려워하는 기업은 진정한 일류 기업이 될 수 없다.

혁신을 하려면 바닥에서 기본적인 것부터 쌓아 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외국 기업의 혁신 방법을 따라 하면 부작용이 생기고 성과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각각의 회사가 가진 문제점과 현실을 파악하고 이를 계승 발전시켜 적용해야만 한다.


―성공적인 혁신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일류에 대한 열망’과 혁신을 실행할 ‘인재’다. 즉 기업은 유능한 인재를 뽑아 꾸준히 교육하고, 적절한 동기부여를 통해 이들이 일류를 향해 정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은 그저 생존 자체가 목표였던 때부터 세계 일류를 외쳤다.

새로운 일을 할 때 처음부터 모든 조직구성원이 100% 만족하고 그 일에 달려드는 경우는 없다. 우선 혁신에 공감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직원들, 즉 불씨를 몇 명이라도 만드는 게 중요하다. 핵심 인재를 기르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제너럴 일렉트릭(GE)에서는 우수 인력 20%를 따로 뽑아서 교육한다. 보통 이 중 4% 정도가 핵심 인력이 된다고 한다. 인사관리에 자신이 없는 조직이라면 애초에 교육 집단을 늘려 전체 직원의 30%를 교육하는 게 좋다. 최고의 조직에는 늘 A급 인재, 핵심 인재가 있다. 전체 교육 외에 이처럼 조직 내 핵심 인력으로 키울 인재들에게 신경을 써야 한다.

―혁신 기법인 식스시그마를 도입해 적자였던 삼성SDI를 단숨에 흑자로 전환시켰다. 당시 식스시그마를 도입할 때만 해도 반대하는 사내 여론이 많았다. 어떻게 이 일을 성공으로 이끌었나.

직원들에게 혁신의 성공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고 했다. 삼성전자에서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 도입에 참여했던 경험을 적극 활용해 삼성SDI 직원을 설득했다. 회사 임원과 간부들이 “이건 이래서 어렵다”고 할 때마다 “이건 이렇게 할 수 있다”고 답을 줬다. 답을 찾기 위해 일이 끝나도 쉬지 않고 공부해야 했다. 또 혁신을 하자고 직원을 설득하기 위해 직접 자료를 만들어 발표도 했다. 아무리 고위직이라도 진정 혁신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면 리더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를 시켜서 하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일이 많을 때는 거의 회사에서 살다시피 했다. 하나에 빠지면 다른 게 눈에 안 들어오는 성격이라 바쁠 때는 일에만 몰두했던 것 같다.

―혁신에 실패하는 다른 기업들은 왜 그런 건가.

혁신피로증이라는 말은 혁신 실패와 관련이 있다. 혁신의 효과가 안 생기면 여기에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혁신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대부분 리더나 의사결정권자에게서 발견된다. 본인이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을 직접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선두에 서서 몰입해야 한다. 리더라도 부하 직원에게 시키기만 해선 안 된다. 지시만 내려놓고 본인은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전남 장성군의 혁신 성공 사례가 있다. 1995년부터 장성군은 ‘장성아카데미’를 운영하며 매주 국내 최고 전문가를 초청해 지역 공무원과 주민들에게 강연을 했다. 교육이 효과를 거두면서 지자체는 정부로부터 100억 원이 넘는 프로젝트를 따냈다. 다른 지자체에서 너도나도 이 프로그램을 따라 했다. 하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장성아카데미 교육에는 군수가 빠짐없이 참여했다. 하지만 다른 지자체 교육에서는 군수들이 인사만 하고 강연 시작 전에 자리를 떴다. 리더가 자리를 뜨니 군의 주요 의사결정권자들도 따라서 자리를 떴다. 정작 강연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강연을 안 들었다. 여기에서 성공과 실패가 갈렸다.

―혁신을 추진하는 기업가들에게 조언을 해 달라.

1980년대 초반 전체적으로 가전사업이 어려웠다. 그때 일본의 컨설팅 회사에서 삼성전자를 찾아와 원가 절감을 할 수 있다며 가치혁신(VE) 프로젝트를 하자고 했다. 혁신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터라 각 사업부장에게 이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사업부장들은 “가격만 비싸고 효과는 없을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컨설팅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하자 냉장고사업부장이 VE기법을 도입했다. 비용을 지원해 주는 대신 매월 손익 분석 보고서 아래에 VE효과로 발생한 이익을 따로 표시해 달라고 했다. VE기법은 생각보다 효과가 컸다. 처음에는 1000만 원 이익이 나던 것이 다음 달에는 5000만 원으로 커졌다. 6개월이 지나자 냉장고사업부장의 표정이 바뀌었다. 다른 사업부에서도 VE기법을 도입할 테니 지원해 달라고 앞다퉈 요청하기 시작했다.

말하고 싶은 것은 경영자들이 ‘혁신’을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정작 혁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혁신에 대한 가치를 알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업에 투자하면 5∼10%의 이익이 생기지만 혁신에 투자하면 3∼4배씩 이익을 거둘 수 있다. 원가 절감, 품질 업그레이드 등의 혁신을 하면 단순 투자보다 훨씬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한테 투자하면 그 효과는 더 크다. 1억 원을 들여서 교육하면 그 직원은 교육비의 10배 이상을 벌어 온다. 혁신을 하자고 하면 대부분 ‘요새 바빠서’ ‘돈이 없어서’라고들 많이 하는데 그럴 때일수록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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