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많이 쓴 고객에게 혜택 몰아주기” 파격적 정책 후 수익이 무려…

최한나기자

입력 2015-01-23 17:14 수정 2015-01-2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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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정태영 현대카드 대표는 고민에 빠졌다. 지난 10년 동안 이어졌던 고속 성장은 그 엔진을 멈췄다.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았다. 아무리 화려한 프로모션을 선보여도 카드사용량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규제는 더 엄격해졌다. 가맹점 수수료를 내리라는 압박이 계속되면서 2.5~2.6%였던 요율이 2% 아래로 떨어졌다. 가만히 앉아 수익이 절반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정 대표를 고민하게 만든 것은 현대카드를 대변하는 키워드라고 생각했던 ‘변화’와 ‘혁신’의 기운이 위축되는 느낌이었다. 경기침체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사세가 위축되고 그와 함께 내부의 역동적인 분위기가 소멸되고 있는 듯 했다.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래서였다. 지금 하는 일을 무슨 이유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깨달으면 변화의 기운을 회복하고 수익 정체를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현대카드만의 회계 기준을 만들다

회사가 하고 있는 일을 근본적으로 생각해보자며 들여다보기로 한 것은 ‘회계’였다. 현대카드는 회계를 통해 현대카드를 들고 나는 돈이 어느 항목으로 얼마나 움직이는지를 확인해 업의 본질과 현 상태를 파악하기로 했다.

문제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회계 방법으로는 돈이 어떻게 들어와 어떻게 쓰이는지를 명쾌하게 알기 어렵다는데 있었다. 항목이 지나치게 잘게 쪼개져 알고 싶은 실제의 비용을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예컨대 전통적인 회계 기준에서 인건비에는 현대카드 임직원에게 지급되는 월급만 들어간다. 하지만 업무를 위탁했거나 아웃소싱해서 그 대가로 외부 업체에 지급한 비용도 외부 ‘인력’에게 지급된다는 측면에서 넓게 보면 인건비에 포함할 수 있다. 전통적 회계 기준에 따르면 업무 위탁이나 아웃소싱에 들어가는 비용은 고객유지비 또는 일반경비 항목에 포함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인력’에 투입되는 전체적인 비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셈이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현행 회계 기준을 무시하고 회계장부를 재편해보기로 했다. 몇 달간 본부별 또는 실별로 토론이 이어졌다. 실장급 이상 간부 전원이 이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우리 사업의 핵심 활동은 무엇인가’, ‘우리가 상대하는 고객을 어떻게 나누면 효과적일까’.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들이 오갔다. 본부장들은 1주일에 한 번식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이 프로젝트를 파고들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고정관념의 탈피였다. 기존 회계 방식에 익숙한 본부장들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비용을 재편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답이 정해져 있거나 선례가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본부장들은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비용들을 이렇게도 모아보고 저렇게도 모아봐야 했다. 다양한 이름의 비용들이 수십 차례 모였다 흩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전략적 의도를 담은 새로운 기준이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이런 활동을 토탈뷰어카운팅(TVA·Total View Accounting)이라고 이름 붙였다.

●“알고 보니 채널 플레이어였다”

현대카드는 TVA를 통해 카드사가 하는 활동을 상품/채널/마케팅으로 나누고 현재 어느 부문에 가장 많은 돈을 쓰고 있는지 살펴봤다. 상품은 카드 상품 자체의 경쟁력, 채널은 영업사원을 통한 고객 모집, 마케팅은 잠재적 고객 또는 기존 회원에게 제공하는 각종 혜택 및 기업 인지도 제고를 위한 마케팅 활동을 일컫는다.

TVA를 적용하기 전 현대카드는 상품에 강하고 특히 마케팅에 뛰어나다고 자평하고 있었다. 알파벳 카드와 컬러 카드를 도입해 중구난방이던 카드업계 상품 라인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고, 일주일 동안 유명 레스토랑을 절반 가격에 즐길 수 있도록 기획한 고메 위크나 디자인과 여행을 주제로 만든 라이브러리 등 현대카드만의 개성을 담은 마케팅을 꾸준히 해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카드는 내심 스스로를 ‘상품 플레이어’ 또는 ‘마케팅 플레이어’로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TVA로 파악한 현대카드는 다른 곳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었다. 특히 채널에 투입하는 돈이 예상보다 컸다. 전체 비용 중 채널이 차지하는 비율은 40%에 육박했다. 반면 마케팅에 투입되는 비용은 고작 7%에 불과했다. 사실상 ‘마케팅 플레이어’가 아니라 ‘채널 플레이어’였던 셈이다.

고객의 카드사용금액과 이들에게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투입한 비용을 연계해 본 결과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줬다. 현대카드가 TVA를 통해 분석한 결과, 현대카드는 월 카드사용금액에 관계없이 고객 누구에게나 비슷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었다. 카드를 수령하자마자 잘라버리는 고객과 꾸준히 사용하며 수익을 가져다주는 고객을 구분하지 않고 같은 혜택을 주고 있었다.

●많이 쓰는 고객에게 더 많은 혜택을

TVA 결과를 받아든 현대카드는 대대적인 개편을 시도했다. 현대카드가 집중적으로 추진한 것은 상품과 서비스 부문의 혁신이다. 핵심은 ‘선택과 집중’으로 요약된다. 무조건 많은 고객을 모아 누구에게나 비슷한 혜택을 제공하기보다는 모집 단계에서부터 수익에 기여도가 높은 고객을 집중 공략해 그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몰아주는 쪽으로 사업 구조를 전면 개편했다. 우선 월 카드사용금액이 50만 원 미만인 고객에게는 아무런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 파격적인 정책을 도입했다. 대신 월 사용금액이 50만 원을 넘기면 이전보다 더 많은 혜택을 줬다.

새로운 정책의 시행을 두고 기존 고객의 이탈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월 카드사용금액은 50만 원에 미치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현대카드를 사용하면서 장기 회원으로 가입한 고객들이 실망하거나 대거 이탈할 리스크가 컸다. 하지만 치열한 내부 토론을 거쳐 현대카드는 월 카드사용금액 50만 원 기준을 도입해 회사의 수익 기여도가 높은 고객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기로 했다. 시장점유율에 연연해 무조건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기보다는 공헌고객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확실한 수익을 얻기로 한 것이다.

이처럼 TVA를 통해 마케팅 및 고객 관리 방법을 바꾼 결과 현대카드는 작년 3분기 당기순이익 682억 원을 기록하면서 전분기 대비 55% 성장세를 보였다. 박기찬 인하대 경영대학 교수는 “현대카드의 TVA 적용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업의 사명부터 파악하고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한 정태영 대표의 변혁적 리더십과 관행 및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조직 문화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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