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 짐승의 언어가 날뛰는 세상, 詩에서 만난 천사

박유안 번역가

입력 2014-12-15 03:00 수정 2014-12-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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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춘수의 천사는 언어의 장인 김춘수가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시의 길 위에서 만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자신의 상징적 언어였다. ―‘시의 근원을 찾아서’(허만하 지음·랜덤하우스중앙·2005년) 》

나는 시집 읽는 걸 좋아한다. 특히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이러저러하게 뒤섞인 시집들 사이로 헤매 다니는 일은 내게 낯선 도시의 골목길을 거니는 것 같은 짜릿함을 준다. 무릇 언어로 구성된 시이지만, 시에서는 간혹 리듬이 의미를 삼켜버리기도 하고, 리듬과 의미가 어우러져 아예 새로운 언어를 만들기도 한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허만하 선생은 그런 낯선 시의 대지들을 거침없이 뛰어다니며 만끽할 수 있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일러준다. 허만하 시인은 러시아의 소설가 솔제니친의 견해를 따라 “진과 선이 쓰러진 현대에는 미가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허 시인은 김춘수 시인을 ‘타고난 시인’이라 일컫는다. 마치 세상을 뜨기 한 해 전인 82세의 나이에 대작 ‘파우스트’를 남긴 괴테처럼 관성에 안주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시의 핵심을 파고드는 작업에 매진했다는 것이다.

유치환 시인의 부인이 보모로 있던 유치원에서 다섯 살의 김춘수가 만난 천사, 의미의 멍에를 내려놓은 그의 무의미 시 행간에서 느껴지는 그의 통영 사투리, 김춘수의 정신 단련에 동원된 온갖 사상의 길라잡이들과 그들이 그의 시 속에 자리 잡아 다양한 모습의 천사들로 드러나는 진풍경.

정신의 단련 없이는 시와 같은 예술 활동이 가능할 리 없다. 시를 음미하는 일은 언어 속에 내려앉은 아름다운 정신을 흠향하는 일이다. 세상은 흉흉하다. 동물이나 진배없는 흉흉한 언어들 탓이 크다.

색다르게 벼려진 아름다운 언어들의 긴장 속으로 풀쩍 빠져들어, 거기서 나의 뿌리, 우리의 천사를 만나도 좋겠고, 그저 헤매다 나와도 좋을 게다. 시라는 야생의 풍경을 누리기 위해, 그 아름다움에 젖어들기 위해, 더 찾아 읽고 싶은 책이 듬뿍 생길 테니까.

박유안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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