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소탐대실

송진흡기자

입력 2014-09-15 03:00 수정 2014-09-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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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흡 산업부 차장
2008년 4월 현대중공업 오종쇄 노조위원장은 쿠바를 방문했다. 회사 측 인사들과 함께 발전용 엔진 영업활동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그는 당시 쿠바 정부 관계자들에게 “품질 향상과 납기 준수를 위해 노조 차원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지난해 8월에는 김진필 노조위원장이 나섰다. 김 위원장은 현대중공업에 대형 선박을 발주한 아랍에미리트 해운회사인 아랍연합해운(UASC)이 노조 파업 등으로 납기가 늦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내자 현지로 날아갔다. 그는 UASC 관계자들에게 “납기 안에 우수한 품질의 선박을 인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 현대중공업 노조는 회사 안팎에서 ‘어용 노조’가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사측에 우호적이었다. 우선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19년간 파업 없이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타결했다. 2004년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결별하면서 정치색을 지웠다. 상급 노동단체에 얽매이기보다는 온건합리 노선으로 실리를 찾자는 조합원 여론이 반영된 결과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현대중공업 노조가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강성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민주노총 재가입을 추진하는 등 사측을 압박하는 강도가 확연히 높아졌다. 급기야 이달 3일에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하면서 파업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돌변한 가장 큰 이유는 조합원의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무분규 원년인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원만한 노사 관계를 유지한 현대중공업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지난해 기준으로 7000만 원대 초반. 걸핏하면 파업을 벌인 현대자동차(9000만 원대 초반)보다 2000만 원 낮다.

“이웃에 사는 현대차 직원과 월급 얘기를 하면 주눅이 든다.” “이번 추석 때 조카가 현대중공업은 월급이 짜다며 현대차로 취업하겠다고 하더라.” “현대차처럼 파업을 해야 월급이 오른다.” 요즘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내놓는 푸념이다. 1983년부터 30년 이상 세계 1위 기업을 유지해왔다는 자존심을 가진 직원들로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라는 생각이 든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인 만큼.

그러나 타이밍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현대중공업은 올 2분기(4∼6월) 영업손실이 1조1307억 원이나 났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다. 극심한 조선경기 침체와 공격적으로 수주한 해양플랜트 부문 손실 급증이 겹친 결과다. 회사로서는 임금을 많이 올려줄 여지가 크지 않은 상황이다.

조선업은 수주사업이라는 업종 특성상 경기를 많이 탄다. 한 번 경기가 좋아지면 ‘돈을 쓸어 담는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수익성이 높다. 14일 현대중공업 신임 사장으로 임명된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이 노조가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참아준다면 회사도 모른 척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직간접적으로 내비치는 이유다. 외환위기 시절 대부분의 국내 기업이 인력을 줄이고 월급을 깎을 때 현대중공업이 직원들에게 정상 월급은 물론이고 보너스까지 준 전례가 있지 않은가. 작은 것(파업을 통한 임금 인상)을 탐하다가 큰 것(세계 1위 기업 경쟁력)을 잃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이 없기를 바란다.

송진흡 산업부 차장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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