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新중년시대]은퇴 후 휴식은 옛말… 남은 시간 새 인생길 찾죠

동아일보

입력 2013-12-12 03:00 수정 2013-12-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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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만 시간 디자인 공모전에서 수상한
리프 아티스트 김종명 씨·이야기 할머니 공옥희 씨


《 “은퇴하면 푹 쉬고 싶다.”

바쁜 일상에 쫓기는 직장인들이 습관처럼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퇴직한 뒤 남아 있는 시간을 계산해 보면 휴식으로만 보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60세에 퇴직한 은퇴자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을 약 8만 시간으로 추산했다. 하루 24시간에서 수면 식사 등 필수시간을 제외한 11시간에 평균적으로 남은 수명 20년을 곱하면 8만 시간이 나온다. 주 40시간 일하는 노동자가 38년 넘게 일하는 시간에 해당한다. 남아 있는 8만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을까.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이 올해 진행한 ‘제3회 8만 시간 디자인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두 주인공들의 ‘8만 시간 활용법’을 소개한다. 》


▼ 공무원… 숲 해설가… 리프 아티스트로 인생이모작 ▼
리프 아티스트로 새 인생 개척


김종명 씨가 지난해 여름 서울에 위치한 사단법인 한국꽃누르미협회 사무실에서 회원들에게 나뭇잎 예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김종명 씨 제공
김종명 씨(62)는 국내 최초의 ‘리프 아티스트(나뭇잎 예술가)’다. 35년 동안 공무원으로 일하던 그는 2008년 공직을 떠난 뒤 숲 해설가이자 환경강사로 활동했다.

그러던 그는 어느 날 어린시절 어머니가 문종이를 바를 때 나뭇잎을 함께 발라 빛깔과 모양을 즐기던 것에서 착안해 국내에서는 생소한 ‘리프 아트’의 길로 접어들었다. 리프 아트는 종이 대신 낙엽에 풍경이나 사람 등의 문양을 새기는 예술 장르다.

생소한 장르에 도전하느라 3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이제는 독자적인 방식의 리프 아트를 발전시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낙엽을 종이처럼 압착 건조시키고 메스로 잘라내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았다.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 국내에는 없던 새로운 장르의 예술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실처럼 가늘게 잎을 조각한 그의 작품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는 “플라타너스, 일본 목련, 피나무 등 면적이 넓은 잎을 주 재료로 사용한다”며 “최근에는 김 위에 조각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청주 국제공예비엔날레 등 여러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중학교 과학교과서에도 실렸다고 한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법에 대해 국제특허도 출원해 둔 상태다.

김 씨는 “한 번은 비행기를 탔는데 텔레비전에 나온 것을 알아본 스튜어디스들이 몰려와 사인 요청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충북 제천시에서 국내 최초의 나뭇잎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에세이 ‘꿈은 현실이 된다’를 요약해 소개한다.



<요약>


35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2008년 후배들을 위해 용퇴했다. 은퇴를 하고 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한 달 정도 번뇌와 걱정으로 밤잠도 설쳤다.

자신을 다시 무장시켜야 한다는 강박감과 그래야 남은 인생을 건강히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시 시작하자. 인생이모작이라 부르지 않던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봉사활동으로 청소년 강의를 시작했고 한글을 모르시는 어르신들을 위한 강사로도 활동했다. 2010년에는 산림 자원을 청소년이나 관광객들에게 안내하는 숲 해설가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무료 미술교실을 찾아 데생 공부를 시작했다. 그림을 배운 지 1년 만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스쳤다. 나뭇잎에 그림을 그려볼까?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물질에 가치를 부여한다면 새로운 창작 예술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뭇잎 조각에 대한 지도를 받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국내에는 전문가나 예술가가 없었다.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을 종이처럼 압착 건조시키고 뒷면에 종이를 배접했다. 배접한 종이에 그림을 그린 후 메스를 갖고 양각 음각 기법으로 표현했다.

끊임없는 노력과 시행착오가 거듭됐다.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했고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모두 수집해 어떤 재료들이 적합한지 연구했다. 하나하나 실패를 반복하는 일, 단계별로 작업과정을 찾는 일에는 열정이 필요했다.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결과 지금까지 국내에 없었던 나뭇잎 예술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예술을 탄생시켰다. 직장을 은퇴한 지 3년 만이었다. 기간은 3년이지만 10년 정도를 보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노력했다. 하나부터 열까지가 모두 노하우이기에 국제특허도 출원해 놨다.

국내 최초라는 점에서 중앙과 지방의 많은 언론에 소개됐고 초청전시회도 가졌다. 2012년에는 회갑을 맞아 기념 전시회도 열었다. 지금은 나뭇잎 예술 강습회, 나뭇잎 예술 체험프로그램, 생태 공예 체험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돈보다도 소중한 이름과 명예를 남기게 됐고 나뭇잎예술 작가라는 호칭도 얻었다. 매년 초대전시회를 열고 있으며 작품전시에 대한 개런티까지 받고 있다. 생활에도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은퇴 후 노후생활이 안정되니 일상이 즐겁다.

자존감을 갖는 것과 스스로 할 일을 찾는 것은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있어 비타민 같은 활력을 주는 일이다. 은퇴 후의 삶은 어떤 것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는 것이야말로 은퇴 후 닥친 제2의 인생을 극복하는 길이다.

상황에 맞는 인생설계는 노후를 윤택하게 만든다. 설계와 꾸준한 실천을 통해 윤택함을 누릴 것인지 아니면 세월에 메여 그냥 흘러 보낼 것인지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며 그 결과도 자신이 받아들여야 한다. 시간은 인생에서 기다려주지 않는다. 정해진 꿈을 이루려는 목표의식, 열정을 갖고 쉼 없이 힘을 다하는 자세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다. 사람은 꿈이 있어야 현실이 된다.


▼ 백의천사… 전업주부… 이젠 이야기 할머니로 통해요 ▼
25년 동안의 주부생활 접고 이야기 할머니로


이야기 할머니로 활동 중인 공옥희 씨가 지난주 서울의 한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전래동화를 들려주고 있다. 공옥희 씨 제공
공옥희 씨(60·여)는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장교로 근무하다 결혼과 함께 대위로 전역했다.

전역 후 민간 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아이를 갖게 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업주부의 길을 걷게 됐다.

25년 동안 주부로 살던 그는 지난해 우연히 ‘이야기 할머니를 모집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이야기 할머니’는 유치원 등 유아 교육 기관에 파견돼 미담이나 전래동화를 들려주는 역할을 한다.

공 씨는 “젊은 시절 사람을 좋아하고 밤 새워 소설을 읽던 경험을 떠올렸다”며 “체력이 부족하지 않을까, 어린아이들 앞에서 실수해 놀림거리가 되는 건 아닐까 고민도 많았지만 결국 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먼저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숨쉬기 운동 말고는 해본 적이 없는 터라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전반적인 생활습관이 개선됐고 지병인 당뇨에도 도움이 됐다. 아이들 앞에서 연주하기 위해 하모니카 연습도 시작했다.

준비를 거쳐 3월 시작한 이야기 할머니 생활은 공 씨에게는 이제 빼놓을 수 없는 삶의 보람이 됐다.

그는 “준비하고 연습하는 시간에 비해 이야기를 하는 시간은 짧지만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는다”며 “너무 유명한 이야기라 가볍게 전달했는데 의외의 대목에서 놀라고 감동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것은 하나의 기적”이라고 말했다.

그의 에세이 ‘뷰티∼풀 마인드, 뷰티∼풀 라이프’를 요약해 소개한다.

<요약>

누구나 화려한 과거 하나쯤 갖고 있듯 나 역시 왕년에는 백의의 천사였다.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간호장교의 길이 평생의 사명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남편을 만나고 전역을 했고, 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다 첫째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을 그만뒀다.

25년이 넘는 기간 누구의 아내 혹은 누구의 엄마로 살았다. 공무원 남편을 둔 덕분에 매달 가지고 오는 급여로 만족하면서 생활을 꾸려나갔다. 남편의 퇴직 후에는 연금을 통해 생활할 수 있으리라 막연하게나마 미래를 그렸다.

그러다 지난해 관공서에서 우연히 이야기 할머니 포스터를 발견했다. 한복을 입고 어린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며칠 동안 고민하다 스스로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따져봤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체력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어린아이들 앞에서 괜히 실수해 놀림거리라도 되면 어떻게 할까. 여러 걱정 때문에 결단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결단한 순간부터는 거침없이 일을 진행했다. 저녁식사 시간에 남편과 아이들에게 선언한 뒤 지원서류를 준비했다. 면접장에서 아직 열정이 남아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합격 전화를 받는 순간에는 찔끔 눈물이 났다.

연수 후 현장으로 나가기 전까지 적극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했다.

가장 먼저 운동을 시작했다. 건강이 뒷받침돼야 친구도 만나고 새로운 사람도 사귈 수 있으며 즐겁게 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다양한 스포츠를 취미로 삼고 있는 아들은 개인 트레이너를 자청하며 식단부터 생활 일정까지 관리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예전보다 보기 좋아진 옷맵시는 덤이었다.

하모니카도 시작했다. 젊은 시절부터 악기 하나 못 다루고 살아온 것에 대해 후회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러나 후회하는 순간조차 아까운 시간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과 배움의 시간은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이야기를 실감나게 전달하고 난 뒤에 찾아오는 기쁨은 열정과 자신감을 일깨워줬다.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간호사 시절 조산사 역할을 했던 경험을 살려 예비 엄마와 초보 엄마를 위한 이야기 놀이학교를 운영하는 것이다.

환경도 세상도 전부 변했으니 더 이상 나만 그대로 있을 수 없다는 걸 확실하게 알았다. 아이들도 어느덧 다 자랐고, 남편도 공직을 은퇴하고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살아나가고 있으니까.

내게는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고 함께 운동하는 동호회 사람들을 비롯해 여러 친구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이곳이 현실이고 여기서 조금만 손을 뻗으면 변화시킬 수 있고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삶의 자세로 내일도 우리 유치원 아이들에게 신나고 즐겁게 이야기해줄 것이다. 삶이 즐겁고 인생이 행복하다. 지난 일을 후회하냐고? 후회하는 시간조차 아깝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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