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성장]사회공헌 3조원 시대… 나누는 기업들이 희망을 키운다

동아일보

입력 2013-03-14 03:00 수정 2013-03-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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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질적으로 커지는 사회공헌

《 ‘3조 원’. 국내 주요 기업들이 2011년 사회공헌 분야에 쓴 총액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매출액 기준 상위 500대 기업 및 회원사 등 600곳을 대상으로 ‘사회공헌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2011년 주요 기업 222곳이 지출한 사회공헌 비용은 3조1241억 원이었다.

국내 기업들이 사회공헌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2002년 1조 원을 넘어선 뒤 10년 만에 그 규모가 3배로 커진 것이다. 이는 같은 해 보건복지부 사회복지 관련 예산(15조3887억 원, 공적연금 제외)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금액만 커진 것이 아니다. 기업 임직원들의 자원봉사 시간도 양적으로 크게 늘어났다. 2004년 572건이던 기업들의 평균 봉사활동 건수는 2011년 2003건으로 증가했다. 1인당 평균 봉사활동 시간 역시 2004년 3시간에서 2011년에는 17시간이 돼 약 6배로 늘어났다. 》


사회공헌활동 늘리는 국내 기업


이러한 수치는 사회공헌활동을 부차적인 영역으로 여겼던 국내 기업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진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1990년대만 해도 국내 기업들은 경기나 기업의 상황이 좋지 않으면 사회공헌활동을 급격하게 줄인다는 비판을 받곤 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1997년 내놓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현황과 과제’ 보고서에서 “일부 대기업의 부실이 금융 불안, 실업 증대, 중소기업 압박 등으로 이어져 지역사회와 국민경제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호황기에 벌인 활동의 순수성이 의심스럽다”고 지적한 바 있다.하지만 최근에는 기업들이 경기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사회공헌활동을 벌이는 모습들이 자주 눈에 띈다. 기업들은 실제 장학금 지원, 집 수리사업 등 소외계층 지원을 비롯해 어린이집, 공원, 복지시설 등 생활편의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까지 넓은 영역에서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경련의 또 다른 조사 결과를 보면 16개 기업은 2011년 적자를 냈지만 사회공헌 규모를 줄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 10명 중 8명은 경기침체의 우려가 있어도 사회공헌활동 규모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거나(50.7%) 확대할 계획(35.1%)이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이 양적인 성장에만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규모가 늘었지만 다문화가정, 홀몸노인, 소년소녀가장 등 일부 소외계층을 돕는 일 등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협력회사와 동반성장하기 위한 노력을 벌이거나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일에도 주목하는 등 사회공헌활동의 범위를 더욱 넓혀 질적인 성장을 이뤄야 한다는 지적이다.


양적 성장에서 질적 변화로


이를 의식한 듯 기업들은 사고의 전환에 힘 쏟고 있다. 사회공헌의 질적 성장과 함께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무도 지켜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최근 연임이 결정된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지난달 취임사에서 “고용과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본연의 역할은 물론이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기대에도 적극 부응해야 한다”며 “이제 기업이 사회적 배려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할 때”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최근 새롭게 떠오르는 활동이 ‘프로보노’다. ‘공익을 위해’라는 의미의 라틴어 ‘pro bono publico’에서 유래한 프로보노는 전문적인 지식 및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대가 없이 제공하는 활동을 일컫는다. 이는 일반적인 자원봉사와 달리 전문적인 영역을 다룬다는 점에서 한 단계 나아간 사회공헌활동으로 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2010년부터 사내 공개모집을 통해 임직원과 의료봉사단을 선발해 여름휴가 기간 동안 아프리카 잠비아, 가나, 에티오피아, 콩고 민주공화국 등지에서 컴퓨터 교육과 가전제품 무상 수리 서비스 등을 진행하고 있다. 가전제품을 잘 아는 직원들이 자신의 재능을 바탕으로 봉사활동을 벌이는 것이다.

SK는 그룹 내에 재능봉사 집단인 SK프로보노를 뒀다. 이들은 마케팅, 홍보, 재무, 컨설팅, 법무 등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바탕으로 80여 곳의 사회적 기업을 지원한다.

CJ제일제당은 인천, 부산, 충북 진천 등 전국 18개 공장의 전문가들이 직접 중소기업을 찾아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자사(自社)의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중소기업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노력을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효성은 사회적 기업 9곳과 경영컨설팅 지원 협약을 맺고 이 기업들에 매달 한 차례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한다. 경영 이슈에 맞는 자가진단 방법도 알려줘 해당 기업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국전력은 2004년 사회봉사단을 창단한 뒤부터 홀몸노인이 사는 주택의 전기설비를 개보수해주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기업이 자리하고 있는 지역사회의 성장을 위한 활동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지역주민들의 기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동시에 기업 이미지 제고 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 생산공장, 연구개발(R&D)시설, 판매망을 갖춘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들 지역에서 소아암 어린이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아프리카 가나에는 자동차 정비기술 교육기관을 설립해 청소년들의 경제 자립을 돕고 있다. 기아차도 아프리카 탄자니아와 말라위에 ‘그린라이트 스쿨’을 세우고 스쿨버스, 마을버스, 이동클리닉, 이동영상차량 등을 제공해 소외지역 주민들의 자립을 지원한다.

LG화학은 낙후지역 및 지방사업장 인근 학교와 복지시설에 대한 교육환경 개선사업과 학습활동 지원 등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문화생활의 기회가 부족한 군 장병 및 지역사회 주민들을 위한 활동도 지속적으로 실시한다.


▼ 착한기업지수 조사해보니… 꾸준히 집중적으로 공익사업한 기업이 좋은인상 남겨 ▼

‘꾸준히 공익사업을 벌이는 기업이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

동아일보가 올해 초 서울여대 착한경영센터, 리서치앤리서치(R&R)와 함께 착한기업지수(GBI)를 조사한 결과 드러난 내용이다. 본보는 지난해 11월 25일부터 12월 12일까지 전국 6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59세 이하 소비자 2925명을 대상으로 국내 주요 기업들의 △진정성 경영 △공익 경영 △배려 경영 등을 설문조사한 바 있다.

그 결과 사회공헌에 들이는 비용의 규모보다 꾸준히 공익사업을 해 온 기업들이 소비자에게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공익경영 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유한킴벌리가 2011년 사회공헌활동에 쓴 금액은 43억7800만 원이다. 이는 주요 기업 평균(140억 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을 벌이며 한 가지에 꾸준히 집중해온 것이 소비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 것으로 풀이된다.

단순한 나눔보다 함께 성장하는 방식의 사회공헌활동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도 많았다. ‘잡은 물고기를 던져주기보다 직접 잡을 수 있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설문 응답자들은 기업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로 신뢰를 꼽기도 했다. 기업들이 고객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태도나 품질 및 가격 등 제품 가치를 높이는 것 이상으로 소비자들은 약속을 지키는 행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해석된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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