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경제]부처의 역사도 힘이 있어야 지킨다?

동아일보

입력 2013-01-24 03:00 수정 2013-01-2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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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의 핵심 신설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는’ 정부조직 세부 개편안이 나온 22일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운용자산 100조 원, 직원 4만5000명인 우정사업본부까지 품에 안는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유민봉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는 “과거 정보통신부의 역사적 근원이 우정국이었다”라고 업무이관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같은 날 브리핑을 TV로 지켜보던 외교통상부 직원들의 표정은 어두웠습니다. 한 외교부 당국자는 “체신부 역사까지 살뜰하게 챙기는 인수위가 정작 120년 통상역사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1차 조직개편에서 통상기능 분리를 통보받은 외교부는 통상교섭권만큼은 어떻게든 지키려고 전방위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교섭권 사수 논리의 핵심이 바로 ‘역사성’이었습니다. 1948년 정부수립과 동시에 탄생한 외무부는 정무국과 통상국을 양대 핵심 국(局)으로 두고 통상정책을 폈습니다. 초대 통상국장인 전해용 전 한국은행 총재, 6·25전쟁 중 통상국장을 지낸 최규하 전 대통령 등이 외교부 통상정책의 시조(始祖) 격입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882년 미국과 맺은 ‘조미수호 통상조약’이 있었습니다. 한민족이 서양과 맺은 최초의 외교조약입니다.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놓였던 조선이 맺은 불평등조약이지만 ‘통상이 곧 외교’임을 강조하는 외교부 논리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역사로만 따지면 우정사업본부도 통상 못지않습니다. 조선 최초의 근대적 행정기관인 ‘우정총국’은 1884년에 설립됐습니다. 1948년 정부수립과 동시에 탄생한 체신부가 줄곧 통신 및 우정업무를 관장했고, 정보통신부가 창설된 1995년 이후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와 우정(郵政)이 분리돼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정이 통신의 역사’라는 인수위의 설명은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정사업본부의 주력 사업인 우편예금과 ICT, 과학기술의 연관성이 깊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120년 역사의 통상업무를 하루아침에 넘겨줘야 하는 외교부로서는 “역사도 힘 있는 부처가 지키는 법”이라는 말을 할 만합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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