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공약 현실성 평가]“R&D확대 - 청년일자리 - 경찰증원 공약 바로 시행해야”

동아일보

입력 2013-01-17 03:00 수정 2013-01-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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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일자리 분야
하우스-렌트푸어 대책… 76%가 “폐기-수정해야”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가장 핵심적인 공약인 ‘가계부채 대책’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유발할 수 있다”라는 이유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박 당선인이 공약집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정부기금을 조성해 채무자의 빚을 탕감한다’라는 내용이 자칫 금융 질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0∼5세 무상보육’과 ‘4대 중증질환 무료 진료’ 등 복지·의료공약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렸다. 사안의 중대성과 시급성에는 상당수가 공감했지만 국가재정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도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반면 ‘국가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공공부문 청년층 일자리 확대’와 같은 일부 공약은 “바로 시행해야 한다”라는 의견이 대부분일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박 당선인의 대표 공약들 가운데 많은 재원(財源)이 쓰이는 공약 15개를 선정해 각각에 대한 경제·재정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
“가계부채 부담을 줄여 집집마다 웃음이 살아나게 하겠다.”(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공약집)

가계부채에 대한 박 당선인의 약속은 ‘국민 행복 10대 공약집’의 첫머리에 나온다. 18조 원의 국민행복기금을 조성해 빚을 최대 50∼70%까지 탕감하고 채무불이행자의 신용회복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전문가의 절반 이상(52%)은 “폐기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또 25명 중 12명은 ‘이행 필요성이 가장 낮은 공약’ 1순위로 꼽았다. 성실히 빚을 갚는 사람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생기고, ‘금융거래의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한다’는 자기책임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이지순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무조건 빚을 감면해주는 것보다 이들에게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게 옳은 방식”이라고 제안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도 “부채 탕감은 최후의 수단으로 아직 가계부채가 그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라며 “그보다는 합리적인 개인파산·회생 제도를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내집빈곤층(하우스푸어)’ 및 ‘렌트푸어’ 지원 공약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바로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은 24%에 그쳤고, ‘유보 또는 수정’(48%), ‘폐기’(28%)를 주장하는 전문가가 대부분이었다.

박 당선인은 하우스푸어의 주택 지분 일부를 공적금융기관에 매각해 대출을 갚게 하는 ‘보유주택지분매각제도’를 제안했다. 이에 대해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개인이 가격 상승을 노리고 투자한 행위를 정부가 세금을 들여 책임지기는 힘들다”면서 “공적 기금을 투입한다 해도 지금 부동산 경기를 감안하면 금세 부실화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분 매각 전 채권자(금융기관)와 채무자(주택보유자)가 손실을 일부 분담하는 방식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보증금을 집주인의 담보대출로 전환하고 그 이자를 세입자가 부담하는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에 대해서는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영 한양대 교수(경제금융학)는 “세제혜택을 준다 해도 이를 받아들일 집주인이 없고 지역에 따라 전세금이 달라 적용 기준과 대상을 정하기도 어렵다”면서 “임대주택 공급 등 기존 주거대책을 강화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정부가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고 공공기관의 청년 채용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에는 높은 점수를 줬다. ‘R&D 투자 확대’는 25명 중 23명(92%)이 “바로 시행해야 한다”고 답했다. 공공기관을 평가할 때 ‘청년 채용 규모’를 포함하는 방안도 11명의 전문가가 ‘가장 시급하게 추진할 공약’으로 꼽았다.

김철중·유성열 기자 tnf@donga.com


▼ 복지-의료 분야… “0~5세 무상보육 양육비 지원 유보-폐기” 64% ▼


복지·의료 부문 공약에 대해서도 바로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보다는 유보·수정하거나 폐기해야 한다는 응답이 대체로 많았다.

‘0∼5세 무상보육 및 양육비 지원’은 ‘유보·수정’ 의견이 절반에 가까운 48%, ‘폐기’ 의견은 16%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필요도 의미도 없는 정책으로 보육시설에 대한 수요만 폭증시킬 뿐 부모에게 실질적 도움이 안 된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많은 전문가는 막대한 재원 소요를 감안했을 때 소득에 따른 차등 지원이 적합한 대안이라고 제시했다.

반면 양인준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재원이나 세부 내용에는 시비(是非)가 있을 수 있지만 현 시점에서는 저출산 대책을 다소 공격적으로 펼 필요도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핵심 의료공약인 4대 중증질환(암·심장병·뇌질환·희귀병) 무료 진료는 의견이 거의 반반으로 갈렸다. ‘유보·수정’이 32%, ‘폐기’가 24%였지만 ‘바로 시행하자’는 의견도 44%나 됐다. 상당수 전문가는 4대 질환의 진료비를 100% 보장하면 상급병실 입원료, 선택진료비 등이 대거 급여 항목으로 전환되며 건강보험 재정의 심각한 누수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했다. 그러나 “막대한 치료비로 인한 가정파탄 등 사회 문제가 심각한 만큼 보장비율 등을 다소 수정하더라도 바로 시행해야 한다”라는 의견도 있었다.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현재의 2배 수준의 연금을 지급한다는 ‘기초연금 도입’에 대해서는 ‘유보·수정’(48%) 또는 ‘폐기’(20%)해야 한다는 응답이 상당수였다. 이 공약은 새누리당 내에서도 “고소득 노인들에게까지 용돈을 줄 필요가 있느냐”라는 반발이 나오며 논란이 되고 있다.

다만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급여체계를 개편해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공약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48%가 바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교육-사회 분야… 고교 무상교육-종일 돌봄학교 긍정평가 많아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교육 공약은 ‘소득 연계 맞춤형 반값 등록금 지원’, ‘고교 무상교육’, ‘온종일 돌봄학교 운영’ 등을 뼈대로 하고 있다. 대학은 소득 수준에 따른 선택적 지원, 초중고교는 보편적 지원을 확대해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교육을 만들겠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소득 하위 80% 가정의 학생에게 국가장학금을 지원해 대학 등록금 부담을 절반으로 낮춰 주는 ‘소득 연계 맞춤형 반값 등록금 지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바로 시행해야 한다’라는 전문가는 24%에 그친 반면 32%는 ‘폐기해야 한다’, 44%는 ‘유보하거나 수정해야 한다’라고 응답한 것. 원윤희 서울시립대 교수(세무학)는 “진로 선택 프로그램 개발과 직업교육 강화 등 전체적인 교육 정상화 방안 마련이 우선이다”며 “지금도 대학 졸업자 상당수가 실업자가 되는데 대학등록금을 지원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고교 무상교육’, ‘온종일 돌봄학교 운영’ 공약에 대해서는 각각 64%, 60%가 ‘바로 시행해야 한다’라고 답해 찬성하는 전문가가 많았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금융학)는 “OECD 회원국 대부분이 고교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만큼 재원만 마련된다면 시행해도 좋을 것”이라며 “온종일 돌봄학교는 여성의 경제 활동 지원 측면에서 도입해 볼 만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기타 사회공약에서는 ‘경찰 인력 증원 및 보수 수당 현실화’가 호평을 받았다. 최근 강력범죄가 늘고 있는 가운데 경찰 인력 증원으로 치안 안정과 함께 일자리 확대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정책이라는 평가다.

반면 사병 봉급 인상을 뼈대로 하는 ‘군 복무 부담 경감 및 보상 확대’ 공약은 ‘폐기해야 한다’(44%), ‘유보 또는 수정해야 한다’(24%)라는 의견이 많았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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