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책]‘간송 전형필’ 평전

동아일보

입력 2012-11-26 03:00 수정 2012-12-3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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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걸으려거든 ‘간송의 삶’이 길이다

이지송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필자의 애송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가치 있는 삶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나침반 역할을 하는 명시다. 가지 않은 길을 걷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고 때로는 고통도 감내해야 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늘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해 묵묵히 걸어온 이들에 의해 움직여 왔다.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1906∼1962)도 그런 분이다. 그는 불과 스물네 살 때 당시 ‘조선 거부 40명’에 들 정도의 큰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편히 사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일본으로 유출되는 문화유산을 안타까이 여겨 서화나 도자기, 불상, 석조물, 서적을 수집해서 이 땅에 남기는 일에 전 재산과 젊음을 바쳤다.

가지 않은 길로 그의 발을 이끈 것은 개인의 명예나 만족이 아니라 ‘조선의 국보와 혼’을 지키겠다는 시대적인 사명감과 책임감이었다.

얼마 전 필자가 수술로 병상에 누워 있을 때 ‘간송 전형필’(김영사)을 다시 펼쳐든 이유도 모든 것이 가벼워져만 가는 시대, 문득 선생의 묵직한 삶이 그리워진 탓이다.

이 평전에는 선생의 일대기와 더불어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느라 겪은 우여곡절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특히 훈민정음 해례본과 고려청자의 백미로 꼽히는 천학매병을 비롯해 영국 변호사에게서 기와집 400채 값에 이르는 거금을 들여 고려청자를 입수하는 과정은 가히 감동적이다. 아무리 고액일지라도 조선 땅에 남겨야 하는 명분이 있다면 값을 따지지 않았던 문화 수호가와 애국자의 면모 앞에서 자연히 옷깃을 여미게 된다.

작은 이익에 쉽게 연연하거나 유행을 좇아 줏대 없이 움직이기 쉬운 요즘 시대에 간송은 우리에게 묻는다. 무엇이 참되고 가치 있는 삶인가? 소신을 갖고,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늘 곁에 이 책을 두기를 권한다.

이지송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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