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F 인천송도 유치]한국의 막판 뒤집기… 유럽 “쿠데타 일어났다”

., 이승헌기자

입력 2012-10-22 03:00 수정 2016-01-2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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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치전 10개월 막전막후

“쿠(coup·쿠데타)가 일어났다.”

20일 오후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녹색기후기금(GCF) 2차 이사회 투표에서 한국이 GCF 사무국 유치 국가로 결정되자 유럽의 한 이사국 대표가 탄식처럼 내뱉은 말이다. 그만큼 기후변화 분야 세계 2위의 원조 규모를 자랑하는 독일의 유치 가능성이 높았던 상황에서 한국의 ‘막판 뒤집기’는 쿠데타에 가까운 거사가 아닐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치전을 주도한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관계자들도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며 환호했다.


○ “국제기구 선진국 편중 해소” 호소



사실 한국이 지난해 12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제17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GCF 사무국 유치 의사를 밝혔을 때만 해도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유치 가능성을 높게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독일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필두로 서독의 수도였던 본을 유럽의 ‘기후변화 거점’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나섰고, 24개 GCF 이사국 가운데 유럽 국가가 9개국에 달해 누구나 독일의 승리를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올해 초부터 유럽, 아프리카, 남미 등 대륙별 이사국들의 여론 흐름을 주시하며 분위기 반전을 모색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6월 브라질에서 열린 유엔 지속가능발전 정상회의 등을 전후해 GCF 이사국 정상들과 ‘맨투맨’으로 접촉하며 한국의 GCF 사무국 유치 필요성을 알렸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등은 각종 국제회의에서 각자의 카운터파트를 접촉하며 유치전에 나섰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국제기구 유치 경험이 많은 독일이나 스위스의 장점을 역이용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유럽 선진국에 집중된 국제기구의 지역 불균형을 해소해야 하며 그런 측면에서 한국의 유치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집중적으로 편 것이다. 이런 노력 끝에 지난달 16∼18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GCF 유치국 평가위원회 회의가 열렸고, 그 결과 한국 독일 스위스 3개국이 유치와 관련한 전 평가항목에서 ‘충족(Green Light)’ 점수를 받았다. 1차 관문을 넘은 것이다.

이때부터 정부 차원의 총력전이 시작됐다. 특히 이사회 투표가 열리기 열흘 전부터는 24시간 비상체제로 전환했다. 당시 청와대는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열어 그때까지 이사국을 접촉한 결과를 토대로 ‘판세 분석’에 들어갔다. 그런데 부처별로 판세 분석 결과가 조금씩 달랐고 이때까지도 표심을 읽을 수 없는 이사국이 6, 7개국에 달했다. 이대로 가면 필패라는 위기감이 확산됐다.


○ 막판 정상과 ‘전화 외교’ 올인한 MB

이 결과를 보고받은 이 대통령은 필수 일정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일정을 GCF 유치에 다걸기(올인)했다. 우선 이사국 정상 전체에게 친서를 보낸 이 대통령은 틈만 나면 집무실에서 전화를 붙들고 이들 6, 7개국 정상과의 핫라인 외교에 나섰다. 특히 독일에 우호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유럽 이사국 잡기에 주력했다.

이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이사국 중 한 곳인 조지아(옛 그루지야)의 미하일 사카슈빌리 대통령과 통화를 하면서 “이제는 한국이 국제사회에 공헌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거듭 설득했다. 결국 사카슈빌리 대통령은 “한국이 조지아의 롤모델”이라며 한 표를 약속하고 나섰다. 이 대통령은 다른 유럽 이사국 공략에도 나섰고, 투표 하루 전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유럽 이사국의 고위 관계자로부터 “최고위층의 정치적 결정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는 힌트를 받았다. 이를 보고받은 이 대통령은 해당 정상에게 바로 전화를 넣어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국가에 대한 공략도 병행했다. 때마침 지난주 초 한-아프리카 협력주간 행사가 서울에서 열렸다. 이 대통령은 1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참석자들을 대거 초대해 만찬을 함께하며 “6·25전쟁 후 외국 선교사가 들고 온 구호품을 받고자 줄을 섰던 내가 이젠 ‘원조를 주는 나라’임을 선포하는 나라의 대통령이 된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며 표심에 호소했다.

아울러 유치전에 나선 멕시코가 중남미 이사국들에 “멕시코가 투표 초반에 떨어지면 한국을 지지해 달라”고 호소했고, 일부 이사국 정상들은 이 대통령을 ‘아미고(스페인어로 친구)’로 부르며 “멕시코가 떨어진다면 한국을 지지하는 게 좋겠다는 확신이 든다”고 말했다. 미국은 물론이고 과거사 문제로 냉전 중인 일본, 자국 어민의 ‘고무탄 사망’ 사건으로 신경이 날카로운 중국도 공개적으로 한국 지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을 거친 이 대통령은 투표 하루 전날인 19일 밤 최종 회의를 갖고 “이 정도면 분위기가 좋다. 할 만큼 했다”며 조심스럽게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리고 다음 날 불과 11개월 전 기대하지도 못했던 대역전 드라마가 현실이 됐다. 자신이 임기 초부터 추진해 온 녹색성장 어젠다에 ‘화룡점정’을 찍게 된 이명박 대통령은 유치 소식을 듣자마자 전용헬기를 타고 송도로 날아갔다. 김상협 대통령녹색성장기획관은 유치 확정 뒤 “도박으로 시작했는데 대박이 됐다”며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대통령은 송도에 다녀온 뒤 페이스북에 “박빙의 경쟁 속에서 정말 조마조마해 의자에 앉아 있기 힘들었다. ‘우리가 해 냈습니다’라는 한마디에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다. 가슴이 벅차 배고픈 줄 몰랐는데 이제 늦은 점심을 한술 떠야겠다”고 심정을 소개했다.

[채널A 영상] 인천 송도, 독일 본을 눌렀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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