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된 세대 ‘X대디’]<上> 내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

동아일보

입력 2012-09-07 03:00 수정 2020-11-1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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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엔 딸과 나들이… 일요일 새벽엔 나만의 사이클 질주

《 직장인 박세범 씨(37)는 아내와 9개월 된 딸을 데리고 한 달에 한 번 강원 영월군에 있는 캠핑장으로 떠난다. 아직 돌도 안 된 딸에게 야외에서 가족끼리 보내는 느낌을 전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자신만을 위한 시간도 포기할 수 없다. 박 씨는 가족이 늦잠을 자는 토요일 오전을 온전히 자신에게 투자한다. 오전 7시부터 11시까지 한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아이 교육에 관심이 많아도 ‘기러기 아빠’는 싫다. 그는 “우리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 입시지옥을 뚫어도 결국은 월급쟁이밖에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세대”라며 “아이에게만은 그렇게 획일화된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박 씨 같은 X대디는 일보다는 가족, 먼 미래보다 현재 자신의 행복에 충실한 X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가족을 위해 여행을 떠나고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주지만 ‘내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

○ 좋은 아빠 꿈꾸는 ‘슈퍼맨’

가족 중심적인 X대디는 ‘좋은 아빠’를 꿈꾼다. 산업화 세대인 자신의 아버지처럼 ‘평일 야근, 일요일 낮잠’의 전철을 밟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 봤자 가족과 멀어지고 회사에서는 실직하게 되는 아버지 세대의 아픔을 목격했다고 입을 모은다.

광고대행사 이노션 월드와이드의 소비자 조사(2011년 전국 남성 599명) 결과에 따르면 ‘수입을 위해 일을 더 하는 것보다 여가시간을 더 갖는 것이 좋다’고 대답한 30대 남성(54.3%)이 20, 40, 50대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경력 관리를 위해서라면 가족과 떨어지더라도 해외에서 근무할 의향이 있다’는 30대는 훨씬 적었다.

수원에 사는 직장인 김모 씨(40)도 일보다 네 살 된 딸이 항상 1순위다. 영업직이라 주변에서 골프를 쳐야 한다고 권유하지만 모른 척한다. 엄마 아빠가 맞벌이를 하는 까닭에 평소 외로웠을 딸을 위해 주말에는 무조건 함께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그가 컴퓨터를 켜면 딸은 “아빠, 나랑 놀러 갈 곳 찾아요?”라고 묻는다.

매주 교외로 나가면 한 번에 10만∼20만 원이 들지만 김 씨는 “아이의 행복이 중요하다. 어릴 때 경험을 많이 해야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다”며 “이게 부모가 도와줄 일”이라고 주장한다. 기러기 아빠는 싫고, 필요하면 차라리 함께 이민을 갈 생각이다. 김 씨는 “아빠와 떨어져 행복한 아이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 X대디 품고 쑥쑥 크는 캠핑&여행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강하고, 어린 시절 여행 경험이 많은 X대디는 캠핑과 레저, 여행산업의 큰손으로 통한다. 실제로 X대디가 주축인 30대는 여행에 돈을 가장 많이 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1 국민여행실태’에 따르면 해외여행 경험자 가운데 회당 평균 지출액은 30대가 270만 원으로 20대(233만 원), 40대(218만 원)보다 많았다. 국내의 한 리조트는 X대디를 겨냥해 ‘나는 아빠다’라는 제목의 여행 이벤트를 마련하기도 했다.

아빠의 존재감이 부각되는 캠핑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국내 캠핑시장 규모는 2009년 1000억 원대에서 지난해 3000억 원으로 커졌다. 코오롱스포츠가 지난달 27일 오픈한 캠핑파크를 예약한 이는 미취학 어린이를 동반한 X대디 가족이 90% 이상이었다.

호텔 패키지를 이용하는 비중도 X대디가 압도적으로 높다. 그 덕분에 서울 신라호텔의 7, 8월 서머패키지 상품의 올해 내국인 판매량은 2009년보다 82.5% 늘었다. 나도연 신라호텔 대리는 “30, 40대 초반 X세대 부부 가족의 비중이 높다. 올여름에는 밤에도 수영장을 열고 클럽 분위기를 연출했더니 X대디들의 반응이 뜨거웠다”며 “요즘은 놀 줄 아는 엄마 아빠를 위한 프로그램이 있어야 온다”고 말했다.

반면 골프용품은 해마다 매출 신장률이 떨어지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2010년 18.9%이던 골프용품 매출 신장률은 올 들어 8월 말까지 4.7%에 그쳤다. 30대 구매 비율도 2010년 14.6%에서 올해 13.5%로 줄어드는 추세다.

이런 움직임에는 X대디들이 가족 중심의 서양식 아버지상을 해외여행이나 외국 드라마 등을 통해 접한 것도 한몫했다. 송모 씨(34)는 “아내와 유럽으로 캠핑여행을 떠났는데 아빠들이 아이와 함께 텐트를 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나도 아이를 낳으면 저런 아빠가 되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 ‘나’도 포기할 수 없다

김일권 씨(34)는 매주 일요일 오전 5시 로드사이클을 타러 나간다. 지난해 아내가 임신하면서 함께 타던 스노보드 대신 혼자 즐길 수 있는 로드사이클에 빠진 것. 하지만 가족과 점심을 먹기 위해 일찍 돌아온다. 김 씨는 “혼자만의 시간이 가족을 위한 일로 선순환된다. 나 혼자 즐겁게 지냈다는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고 말했다.

X대디는 가족만큼이나 자신의 행복에도 충실하다. 아이 장난감을 살 때도 자신의 취향을 반영한다. 김재상 씨(40)는 6세 아들에게 생일과 어린이날마다 레고 시리즈를 사준다. 아들이 혼자 레고 조립을 못 한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가격이 비싸 ‘그림의 떡’이었던 레고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구매하는 것이다.

이들은 가족을 중시하면서도 무조건적인 희생은 꺼린다. 자녀 교육에 열성적이라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고 여기면서도 ‘기러기 부모’를 감수하겠다는 응답은 다른 연령대보다 낮다. 자녀 교육을 위해 노후대비 자금을 양보하겠다는 응답도 역시 낮았다.

이런 성향 덕에 X대디의 행복지수는 다른 세대보다 월등히 높았다. ‘나는 행복하다’(56.1%), ‘나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그때그때 풀어버리는 편이다’(47.6%)는 응답은 전 세대에서 30대 남성이 가장 높았다.

최창원 이노션 브랜드커뮤니케이션연구소 박사는 “30대 특유의 생애주기적인 특성도 있지만 X대디는 전통적인 기성세대와 달리 자신의 행복을 가치관의 중심에 둬 다른 연령층보다 삶의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채널A 영상] ‘X세대가 돌아왔다’ 자유분방 30, 40대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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