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몰리는 2030]“등록금 벌어올게요” 사라진 아들, 돌아온건 “대출금 갚으라”는 전화 뿐…

동아일보

입력 2012-06-09 03:00 수정 2012-06-0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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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다단계사기 등 쉽게 당해… 서울 피해신고 69%가 2030

25세 청년 A 씨는 아버지가 실직한 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왔다. 매일 취업사이트를 뒤지며 일자리를 찾았지만 학력도, 경력도 부족한 A 씨가 취업문을 넘기는 어려웠다. 마음만 조급해질 뿐이었다. 그때 T회사에서 낸 ‘조건 없이 온라인마케팅 직원을 구한다’는 공고를 봤다.

2월 면접을 보자마자 합격했다며 회사는 계약서 작성을 요구했다.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계약서를 제대로 읽지도 못한 채 서명했다. 고용 계약이라면서 ‘생산제품을 구매한다’는 사실상의 판매 약정서였다. 입사 취소를 요구했더니 회사는 위약금을 물어내라며 100만 원을 요구했다. A 씨는 딱한 사정을 호소하며 서울시 민생침해 행위 피해구제 시스템 ‘눈물 그만’에 신고했다. 서울시는 이 업체가 중재를 거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방침이다.

치솟는 등록금, 심각한 취업난 등 2030 청년 세대에 경제적 고통이 집중되는 가운데 이들을 두 번 울리는 민생침해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올해 1∼5월 서울시의 ‘눈물 그만’과 다산콜센터(120)에 접수된 피해사례는 무려 9230건. △불법 사금융 △다단계 방문판매업 △불법 전자상거래 △임금 체불 △취업 사기 △부동산 사기 △청소년 성매매 등 민생침해 7대 행위가 대부분이다. 이 가운데 20대가 3586건, 30대가 2741건으로 전체의 68.6%를 차지했다. 정종철 서울시 민생대책팀장은 “20, 30대 구직자가 다단계에 속거나 등록금 때문에 쓴 사채로 시달리는 등 안타까운 사연이 많다”며 “물정에 어둡고 돈이 급한 청년들이 오히려 범죄의 타깃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등록금 벌려다… 억대 연봉 준다기에…”
물정 어둡고 돈 급한 2030 ‘범죄 타깃’으로


○ 2030의 절박함을 악용한 범죄 기승

‘등록금 1000만 원’ ‘청년백수 100만 명’ 같은 2030세대의 우울한 자화상은 특히 불법 다단계 피해 사연을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서형석 서울시 민생대책팀 주임은 “얼핏 보면 어이없게 당하는 것 같지만 절박한 마음을 악용하기 때문에 피해가 계속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준비하던 B 씨(22)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물류창고 아르바이트를 하자는 친구를 따라 서울에 왔다가 불법 다단계에 빠졌다. “등록금 벌어올게요”라는 전화 한 통을 남기고 연락이 끊겼다. 그 대신 대출금을 갚으라는 전화가 집으로 오기 시작했다. B 씨 부모가 시에 신고했고 경찰 도움으로 지하 쪽방에 거주하던 아들을 찾을 수 있었다. B 씨는 “졸업해도 취직이 어려운데 잘만 하면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솔깃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번듯한 직장이 없는 2030세대는 불법 사금융 피해를 보기도 쉽다. 집안에 경조사가 있거나 몸이 아파도 급하게 돈을 빌릴 곳이 없다 보니 고금리를 감수하고 대부업체를 찾는 것.

C 씨(33)는 지난해 4월 6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렸다. 형편 때문에 차일피일 미뤄 온 결혼이었다. 집을 구하기 위해 사금융업체에서 1500만 원을 빌렸다. 회사가 어려워져 월급이 밀리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상환이 늦어지자 임신한 아내에게까지 ‘남편을 데려오라’며 협박했다. C 씨는 “빚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고 말했다.


○ ‘고수익’ ‘최저가’ ‘고임금’ 의심해야

이처럼 불법 다단계나 불법 사금융업체에서 피해를 보았다면 서울시가 운영하는 피해구제 홈페이지 ‘눈물 그만’(seoul.go.kr/tearstop)으로 신고하면 된다. 120다산콜센터로 전화해도 된다. ‘눈물 그만’ 홈페이지에서는 신고 접수와 함께 구제절차도 소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도 불법 사금융 피해신고센터(1332)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쉽게 돈 벌 길이 없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고수익’ ‘최저가’ ‘고임금’ 등을 내세운다면 반드시 의심해 봐야 한다. 다단계업체에 가입하기 전 반드시 공정거래위원회나 직접판매공제조합 등에 합법 업체인지 물어본다. 학자금 대출을 권유해 상품을 구입하도록 한다면 불법 다단계인지 의심해야 한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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