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산 원유 수입’ 美만 쳐다보다 EU에 뒤통수 맞았다

동아일보

입력 2012-05-29 03:00 수정 2012-05-29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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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선박 재보험 중단’에 이란산 원유 수입 이달말부터 중단

미국이 이르면 이번 주 발표할 국방수권법(이란산 원유 금수 등을 규정한 이란 제재법) 적용의 예외국가 명단에 한국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산 원유 수입 중단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미국과 집중적인 협상을 벌여온 정부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란산 원유는 이달 말부터 사실상 수입이 중단된다. 유럽연합(EU)의 ‘이란산 원유 수송 선박의 재보험 제재’를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미국에만 매달리다 EU의 재보험 제재라는 ‘복병’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U 외교장관이사회가 이란 제재안을 내놓은 것은 올해 1월 23일. 그 일주일 전인 16일 로버트 아인혼 미국 이란·북한제재조정관이 방한해 한국의 이란 제재 동참을 요구한 것에 관심이 집중돼 있던 시점이었다. EU의 제재 방안에는 이란산 원유를 수송하는 선박에 대해 재보험을 해주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원유 수송 선박은 사고가 발생하면 피해 규모가 엄청나기 때문에 재보험에 들지 않으면 사실상 운항이 불가능하다. 좌초 시 선박 자체와 원유의 손해배상 규모도 크지만 원유 유출로 인한 환경오염이나 인명피해까지 감안하면 척당 배상 규모가 1조 원이 넘을 정도다. 이 때문에 대다수 국가는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원유 수송 선박의 입항을 금지하고 있다.

문제는 원유 수송 선박의 재보험을 감당할 수 있는 글로벌 재보험사가 대부분 유럽국가에 있다는 점이다. EU가 글로벌 재보험사에 이란산 석유 수송 선박의 재보험을 해주지 못하도록 금지하면 한국 정유업계의 이란산 석유 수송도 중단될 수밖에 없다. 이란산 원유 수송에 걸리는 40일간의 기간을 역산해 계산하면 5월 말부터 선적이 중단되는 셈이다.

지식경제부와 기획재정부, 외교통상부의 실무자들은 그동안 미국뿐 아니라 EU의 제재도 지속적으로 주시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3월 EU의 제재 이행규정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이 문제가 한국에까지 파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들은 “우리는 2월까지만 해도 미국 문제만 해결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뒤늦게 심각성을 깨닫고) EU 제재에 대해 언론에 쉬쉬하며 대책을 찾아 헤맸다”고 전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이달 초까지 “(미국 국방수권법 예외 적용으로) 다 해결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는 뒤늦게 EU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과 주요 회원국에 협상팀을 다시 보내 설득에 나설 계획이다. 그러나 막판 대응책 마련 과정에서 부처 간 조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 당국자는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재보험의 일부만이라도 부담하든지 일본처럼 사정이 비슷한 이웃국가와 협력하든지 대안을 찾아볼 수도 있을 텐데, 각 부처가 따로 놀면서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는 식으로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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