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올해 화두는 ‘공정 경제’

동아일보

입력 2012-01-26 03:00 수정 2015-05-1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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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국정연설서 “부자 증세” … 중산층-서민 대선표심 공략

“우리는 지금, 잘사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고 생계를 근근이 유지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사회에 안주할 것이냐, 아니면 모든 사람이 공정한 대접을 받고 같은 원칙을 적용 받는 사회를 재건하느냐를 결정할 순간에 놓여 있습니다.”

24일 오후 9시(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하원 본회의장에서 1시간 5분 동안 진행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2012년 신년 국정연설 화두(話頭)는 ‘경제적 공정(economic fairness)과 평등(equality)’이었다. 임기 마지막 해를 맞아 재선을 향해 뛰고 있는 그는 이번 연설에서 부자와 중산층·서민을 나누는 이분법을 택했다. 부자에게 높은 세금을 물리는 ‘버핏세’를 도입하겠다고 거듭 밝혀 중산층과 서민의 표심을 공략하겠다는 대선 전략을 그대로 드러냈다.

외교 문제에 대한 언급은 많지 않았다. 취임 후 국정연설 때마다 빠지지 않던 북한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이 태평양 국가임을 분명히 해왔다”고 강조하면서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을 재확인했다. 이란 제재에 대해선 “이란이 핵무기를 획득하는 것은 단호하게 막을 것”이라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어떤 옵션도 테이블에서 내려놓지 않겠다”고 말했다.

▼ 65분중 30분 ‘경제’ 역설… 매년 등장하던 北언급 안해 ▼

이날 연설의 핵심은 역시 공정을 주제로 한 경제 재건이었다. 총연설에서 절반에 가까운 30여 분을 할애했다. 그는 “매일 열심히 일하고 법률을 준수하는 수백만 명의 미국인은 정부와 금융시스템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지금은 최고위층에서 밑바닥까지 똑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책임을 다하면 보상을 받는 ‘건실한 경제’를 임기 말 국정운영의 청사진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부자의 의무’를 수차례 강조했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이를 위한 세제 개혁을 주요 국정 과제로 내세웠다. 그는 “한 해 100만 달러 이상을 버는 고소득자는 최소한 30%를 세금으로 내고 주택이나 건강보험 등에 세금공제를 해줘서는 안 된다”며 부자 증세(增稅)를 촉구해 공화당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버핏세 도입을 다시 꺼내들었다. “억만장자에게 자신의 비서와 같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는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경제 살리기 대통령’을 자처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2010년에 2000만 달러가 넘는 투자 소득을 올렸으면서도 세율은 13.9%에 불과한 것을 겨냥하는 발언으로 들렸다. 그는 “의회가 협조하면 같이 갈 것이지만 협조하지 않을 경우엔 내가 행사할 수 있는 모든 행정권한을 동원하겠다”며 공화당을 압박하기도 했다.

또 금융권의 부당이익을 감시하는 금융범죄부(Financial Crime Unit)를 신설하고 금융위기를 몰고 온 은행권의 무분별한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관행을 조사하기 위한 특별기구 구성도 검찰총장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나온 화두는 쇠퇴해가는 미국 제조업의 부활. 오바마 대통령은 “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기업엔 세금 감면 혜택을 중단하고 미국에서 생산하는 기업에는 세금 혜택을 주도록 하겠다”며 미국 일자리 창출 여부에 따라 채찍과 당근 전략을 병행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수출을 늘리기 위해 위안화를 인위적으로 절하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서도 더는 참을 수 없다는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그는 “중국과 같은 불공정한 무역관행을 조사하기 위해 무역집행부(Trade Enforcement Unit)를 신설할 것”이라며 “중국에서 만드는 복제품과 불안정한 상품이 국경을 넘어오는 것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또 “미국 근로자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생산적”이라며 “운동장이 평평하면(경쟁 환경이 동일하다면) 미국인은 항상 이긴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국정연설을 계기로 대선 메시지를 분명히 하면서 본격적인 재선 캠페인에 돌입할 예정이다. 국정연설 바로 다음 날인 25일부터 2박 3일 동안 아이오와 애리조나 네바다 콜로라도 미시간 등 5개 주를 돌면서 지방투어에 나선다. 이들 5개 주는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로 표심이 오락가락해 공화당과의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는 곳이다.

한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연설은 재선 캠페인을 위한 당파적인 플랜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토머스 도너휴 미 상공회의소 회장은 “오바마 대통령의 많은 제안은 높은 세금과 많은 정부 지출, 넘쳐나는 정부 규제에 근거를 두고 있다”며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자유기업 경제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State of the Union ::

미국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을 ‘State of the Union’이라고 부르는 것은 헌법 규정에서 유래한 것이다. 미국 헌법 제2조 3항은 “대통령은 때때로(from time to time) 연방의 상태(State of the Union)에 대해 의회에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1월 3일 상하 양원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하기 시작하면서 매년 1월 국정연설은 미국 정치의 관행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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